1970년 데뷔일에 벌써 5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미모에 여배우를 거론될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정윤희입니다.
당시 장미희 유지인과 함께 7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 중 한 명으로 가히 신드롬에 비견될 만한 인기를 구가한 그녀는 일본 중국 등 그때만 해도 드물었던 해외에서의 인기도 엄청났습니다.
여전히 그녀를 그리워하는 팬들이 많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그녀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그녀를 둘러싸고 사망설 침해설 등의 이야기가 돌기 시작합니다. 그 시절 큰 인기를 끌었던 정윤희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정윤희는 1954년에 태어나 우아하고 선 굵은 미모로 수많은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70년대의 대표적인 한국 미인 여배우입니다.
일본에서는 정윤희를 아시아 최고의 미인이라고 엄청난 찬사를 했을 정도 정윤희의 미모는 국제적으로도 큰 화제였습니다.
이 당시 일본의 한 언론은 일본의 여배우 100명을 다 합친다고 해도 정윤희 한 사람의 미모를 당해낼 수 없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정윤희는 드라마에도 출연해 매우 인상 깊은 연기를 펼치면서 시청자들의 큰 환호를 받았는데 1977년 라이벌인 장미희와 함께 <청실홍실>에 출연하여 연기 경쟁을 펼치며 더욱 대중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당시에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청실홍실>에 출연한 정윤희는 당시 장미희와 한 남자를 두고 경쟁하였는데요.
면접관계를 형성하면서 실현을 당한 비련한 여주인공 역을 훌륭히 소화해 냅니다.
이 당시 홍콩 최고의 액션 스타였던 성룡이 정윤희의 미모에 홀딱 반했고 그녀를 짝사랑했었다는 비밀스러운 고백을 해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죠.
성룡이 70년대에 한국에 자주 와서 무술 액션 영화를 많이 찍었었는데 당시 성룡이 한국에 자주 와서 영화를 찍었던 이유는
성룡이 한국의 정윤희를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하며 덕에 한국에 대한 애정도 생겼다고 합니다.
실제로 70년대 후반의 성룡은 정윤희와 데이트를 여러 번 했다고 고백해 충격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후 정윤희는 동양 방송의 인기 프로그램인 <쇼쇼쇼>의 2대 MC를 맡아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77년 장미희와 함께 주연을 맡은 드라마 <청실홍실>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정윤희는 스타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1979년부터 유지인과 더불어 영화실적에서 정점을 찍었습니다. 무려 1년 동안 네 편의 영화를 성공시키는 저력을 보여줬습니다.
정윤희는 한 번도 타내기 힘들다는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80년과 81년 두 번씩이나 수상했을 정도로 미모 못지 않게 연기력도 뛰어났습니다.
이로써 정윤희는 단지 얼굴만 예쁜 여배우라는 꼬리표를 떼고 미모와 연기력을 모두 갖춘 명실상부한 진정한 연기자로서 공인받았던 겁니다.
그러나 배우로서 한창 활발하게 활동해야 할 30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연예계 은퇴를 선언하며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는데요.
정윤희는 당시 J건설 조회장과의 결혼과 동시에 은퇴 수순을 밟았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문제는 외도였는데요.
정윤희를 전 국민의 사랑을 받던 역대급 비주얼의 여배우에서 행복한 가정을 파탄낸 외도녀로 추락시킨 건 당시 유부남이던 조 회장과의 외도 현장을 조 회장의 아내 박 모 씨가 습격한 사건의 영향이 컸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하고 있던 박 모 씨가 경찰과 함께 정윤희의 집을 급습하여 함께 잠을 자고 있던 조 회장과 정윤희를 그대로 경찰에 연행시켜 버린 것이죠.
조 회장과 정윤희는 외도죄 혐의로 유치장에 수감되기에 이르는데요. 전 국민에게 사랑받던 미모의 여배우가 두 살 된 딸과 4개월 된 어린아들이 있는 남성과 은밀한 외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대대적인 파문을 일으켰고 국민 역적이 되어버립니다.
다행히 조 회장이 전 아내 방 모 씨에게 보에게 합의금을 제시하면서 5일 만에 유치장에서 풀려나게 됩니다.
두 사람은 1984년 공식적으로 결혼 현재까지의 결혼 생활을 이어오고 있는데요.
외도로 구속까지 당한 불명예를 잇게 된 정윤희는 이후 어떤 공식 석상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지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정윤희의 불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정윤희는 조 회장과 결혼해서 전처 사이의 자녀 1남 1녀를 슬하에 두고 있었고, 별도로 자신과 조 회장 사이에 낳은 친아들 하나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윤희가 직접 낳은 막내아들이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중 친구들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갑자기 호흡곤란을 일으키면서 쓰러졌고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숨을 거두었습니다.
부검결과 과다중독으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고 밝혀졌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피붙이 자식이 객지에서 과다 중독으로 세상을 떠남으로 정윤희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정윤희는 말년에 친아들의 급작스러운 소식과 함께 남편이 운영하는 건설회사의 부도라는 이중고를 함께 겪으며 엄청난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정윤희는 이러한 악자를 겪으면서도 매우 의연하게 생활해 가고 있다고 합니다.
정윤희의 주변 사람들의 전원에 의하면 정윤희는 자신에게 닥쳤던 이런 불행들을 모두 의연하게 극복하였고 현재 시부모님도 지극정성으로 모시 가정에 더욱 충실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성당에도 성실하게 다니는 등 천주교 신자로서 신앙 생활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천주교에서 병원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신자들 사이에서는 정윤희는 얼굴도 마음도 모두 예쁜 자매님이라고 불리고 있을 만큼 인품에 대한 칭찬이 자자합니다.
한 때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이제는 추억속에 남아 있는 그녀가 행복한 나날을 보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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