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병에 치료비 때문에 빚까지…” 트롯 가수 박서진 최근 전해진 안타까운 근황, 눈물이 섞인 고백 모두가 오열을 할 수 밖에 없던 이유

지난 2011년 여름의 어느 날 삼천포의 고기잡이 배 위에서는 오직 아버지만을 위한 아들의 콘서트가 펼쳐졌습니다.

17이라는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구수한 목청으로 노래를 부르던 소년 아들의 재롱 덕분에 강도 높은 노동을 하면서도 아버지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죠.

이 소년의 이름은 박효빈 수년 후 대한민국의 전설적인 트롯 가수 박서진으로 성장할 바로 소년이었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알 정도로 실력 있는 심지어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가수 박서진이 왜 12년 전 그날에는 낡은 고기잡이 배위에서 아버지의 일을 돕고 있었던 걸까요?

가수 박서진이 아닌 인간 박서진의 인생 이야기 긴 여정을 지금부터 들려드리겠습니다.

1995년 8월 21일 우렁찬 첫 울음을 터뜨리며 세상에 태어난 박서진 그는 경남 3000포에서 두 명의 형과 여동생 한 명을 둔 사 남매의 셋째, 아들로 자라났습니다.

갓난아기 때부터 할머니의 손에 키워진 박서진은 비교적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트로트의 구수한 매력에 푹 빠졌는데요.

박서진은 자신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너무나 기뻐하며 박수를 치고 또 세상 근심과 슬픔을 잊는 듯 보이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자연스레 트롯 가수의 꿈을 갖게 됩니다.

때로 소년 박서진은 누가 들어도 감탄할 만큼 훌륭한 가창력을 갖추고 있었는데요.

덕분에 그는 만으로 15살에 불과했던 2008년 1월 전국 노래자랑과 놀라운드의 스타킹 등 유명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할 기회까지 얻게 되죠. 어린 나이에 소년이 트로트를 이렇게까지 잘 소화한다니 심지어 삼천포에서 소문난 효자로도 유명한 아이라니 사람들은 서서히 소년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박서진 또한 이제는 가족들을 넘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방송을 통해 자신의 노래를 들려줄 수 있다는 사실에 큰 기쁨을 느꼈죠 하지만 그의 인생에는 아직 너무나 많은 장벽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박서진이 17살이 되던 해 그의 삶에는 너무나 큰 비극이 닥쳐옵니다. 그때까지 동생의 꿈을 열성적으로 응원해 주었던 두 형이 나란히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죠.

형들의 목숨을 빼앗아간 질환은 각각 갑상선암과 만성신부전증 워낙에 급속도로 증상이 나빠졌던 탓에 형들은 차마 손을 써보기도 전에 숨을 거두고야 말았습니다.

그것도 각각 49일이라는 짧은 텀을 두고 말이죠. 갑작스럽게 친구이자 버팀목이었던 두 형을 잃게 된 박서진 그럼에도 그는 마음껏 눈물을 쏟지도 못했습니다.

생때 같은 아들을 두 명이나 떠나보내며 자신보다도 더 가슴이 아플 부모님을 걱정했기 때문이죠.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두 형의 병원비가 고스란히 빚으로 남은 상황에서 어머니까지 암투병을 시작하게 되었고 아버지조차도 중증 당뇨로 몸이 불편해지기 시작하면서 박서진의 가족들은 심각한 위기를 겪게 됩니다.

당장 돈을 벌어올 사람이 없으니 병원 치료는 둘째, 치더라도 생계 자체를 꾸려나갈 수가 없었기 때문인데요.

결국 겨우 고등학교 1학년에 불과했던 박서진은 부모님과 여동생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무거운 결정을 내립니다.

학업을 이어나가는 대신 몸이 아픈 아버지를 도와 고기잡이 일을 하고 가게에 보탬이 되기로 결정한 것이죠.

자연스럽게 어릴 적부터 키워오던 가수의 꿈마저 좌절된 상황 그럼에도 17살의 박서진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부모님께 한창 투정을 부릴 나이였지만 오히려 씩씩하게 아버지를 도와 일했고 배 위에 오르면 힘들어하는 아버지를 북돋아 드리기 위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도 목청껏 불렀죠 그리고 이렇듯 애틋하고 처절한 박서진의 사연은 방송국에까지 전해지게 됩니다.

그렇게 박서진의 가족은 한 방송 프로그램으로부터 출연 제의를 받게 되죠. 이게 바로 그가 탑스타로 성장한 이후에도 종종 회자되는 KBS 인간극장 바다로 간 트로트 소년 편인데요.

당시 박서진은 매일같이 고된 바닷일을 하면서도 귀가 후에는 아픈 어머니를 살갑게 챙기고 또 애교까지 부리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힘들지 않냐는 어른들의 질문에는 무대는 저의 비타민이에요.

아무리 아파도 무대만 가면 다 나아요라는 씩씩한 답변을 내놓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그를 마주한 대중들은 이 소년에게 큰 연민과 동시에 뜨거운 감동을 느꼈죠.

덕분에 박서진은 2011년 9월 방영된 인간극장에 힘입어 그해 11월 말 다시 한 번 스타킹의 얼굴을 비추게 됩니다. 그리고 이 스타킹을 통해 그에게는 생각지도 못했던 두 가지 행운이 찾아왔죠.

하나는 기적의 목청킹이라는 프로젝트에 선정되며 생애 최초로 전문적인 보컬 수업 까지 들을 수 있었던 것이고요. 또 다른 하나는 암투병을 이어가면서도 치료비가 없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던 어머니에게 든든한 후원인이 생겼다는 겁니다.

정체는 바로 대한민국 원조 트로킹 장윤정 스타킹을 통해 박서진의 가슴 아픈 사연을 알게 된 그녀는 기꺼이 그의 어머니를 위해 치료비를 대주었는데요.

덕분에 어머니는 서서히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고, 그때까지 아버지를 도와 어업을 했던 박서진 역시 다시금 트롯 가수의 꿈을 위해 정진하기 시작합니다.

정식 데뷔 전부터 자주 길거리 버스킹을 진행하며 무대 감각을 키워냈던 박서진 이미 몇 차례의 방송 출연과 수많은 버스킹 공연을 통해 업계의 유망주를 인정받았던 그는 2013년 싱글 앨범 꿈을 발매하며 마침내 꿈에 그리던 데뷔를 이루었습니다.

워낙 노래 실력도 좋고.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실력도 뛰어났기에 박서진과 그의 지인들은 데뷔 직후부터 큰 인기를 얻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트롯 붐이 시작되기 전이었기에 그의 노래가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지 못했던 것이죠. 결국 박서진은 그토록 갈망하던 데뷔 뒤에도 쉽사리 이름을 알리지 못하며 4년간의 지난한 무명 시절을 겪게 됩니다.

하루에 10시간 이상 노래를 부르고도 제대로 페이를 지급받지 못하는 일이 부지기수였고 무대 설비라고는 갖춰지지도 않은 곳에서 심지어 맥주박스 위에 올라가 무대를 한 적도 있었죠.

게다가 사람들은 20대 초반의 무명 가수에게 너무나 지독한 냉대와 멸시를 쏟아냈습니다. 넌 얼굴도 못생겼고 빽도 없으니 가수할 생각하지 마라 아무리 노력해도 넌 무명가수일 뿐이다.

악의에 가득 찬 말들을 면전 앞에서 들으며 어린 박서진은 다짐했습니다. 난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언젠가 전국 곳곳에 불려다니는 가수가 될 것이다라고 말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떠야 했습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사람들의 눈에 들어야 했죠. 그래서 박서진은 자신만의 히든카드를 개발하게 됩니다.

그게 바로 장구 그는 21살의 나이에 장구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고, 곧 직접 개조한 장구를 들고 무대에 올랐습니다.

흥이 가득한 장구 소리와 반대로 잔뜩 한이 서린 목소리 협소한 공간이지만 결코 기죽지 않고 관객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는 무대 매너 박서진의 남다른 매력은 대중들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죠.

머지않아 그를 무시하던 이들까지도 박서진의 이름을 연신 외쳐댔고 그렇게 그는 서서히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유튜브에 무대 영상을 올리며 중장년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이 영상들의 인기에 힘입어 전국 각지 행사장에 초청되며 더더욱 뜨거운 사랑을 받게 되었죠.

서서히 인지도가 상승한 그에게는 답별이라는 이름의 든든한 팬덤까지 생겨났으며 어느새 그가 가는 행사장을 일일이 따라다니며 매번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는 이들까지 늘어났습니다.

과거에는 그저 상상으로만 그쳤던 수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된 상황 누군가는 현실에 안주하며 교만해질 수 있는 시점이었지만 박서진은 달랐습니다.

결코 자기 계발을 게을리 하지 않았죠 그렇게 옳초 그는 장구의 신이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겸허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다름 아닌 미스터 트롯 투의 출연 결심을 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 미스터 트롯 투는 그에게 마냥 좋은 기억이 아닙니다.

박서진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게 아니냐 우승자가 내정되어 있는 게 아니냐라는 의심까지 샀을 정도로 그에게는 가슴 아픈 상황들이 연달아 이어졌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성심성의껏 때로는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도 멋진 무대를 펼쳤던 어떤 박서진 이 모습을 본 시청자들은 오히려 박서진을 향해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으며 그의 팬을 자처하는 이들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계기가 되었죠.

박서진의 진심이 드러난 것은 미스터 트로트 외에도 많습니다. 그는 이미 탑급 가수가 된 뒤에도 행사장을 가리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예로 한 번은 그가 웬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일부 네티즌들을 당황하게 만든 적도 있었죠. 하지만 알고 보면 이 역시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한 그의 결단이었습니다.

자신이 과거 무명이었던 시절 어떤 초우와 행사장의 관객들보다도 더 뜨거운 응원과 환호를 보내주었던 시골 마을의 관객들을 잊지 못한 그가 다시금 해당 축제의 가수로 참여한 건데요.

이렇듯 남다른 진심으로 노래를 부른 덕분일까요? 이제 박서진은 트로킹을 뽑는 투표에서 거뜬히 상위권을 차지하고 브랜드 파워의 1위를 몇 주씩이나 유지하는 등 만인에게 사랑받는 가수로 자리매김했죠.

그러나 감히 단언컨대 지금처럼 진심 어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한 박서진은 아주 오래오래 훌륭한 가수로 인정받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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