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까지 앨범 준비하며 지냈는데…” 최근 잠적한 임재범에 대한 소속사가 공개한 충격적인 근황

가수보다 소리꾼으로 불리길 원하는 임재범은 “음악의 신”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MBC의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에서 “나만 가수다”라는 유행어를 낳으며 화제를 모았죠. 그의 노래는 아무리 따라하고 싶어도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경지에 있습니다. 임재범의 노래를 듣고 이선희는 “저렇게 부를 수 없다는 것에 절망했다”며 가수로서의 고뇌를 밝혔고, 이현우는 “내가 가수를 해도 되나”라는 고민에 빠졌다고 합니다. 그만큼 많은 가수들이 절망을 느끼게 한 소리꾼이 바로 임재범입니다.

임재범은 단순히 폭발적인 성량을 가진 가수가 아닙니다. 섬세한 감정 처리와 전달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지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한국 가수들 중에서도 보기 드문 통과 파워(공명)는 대중뿐만 아니라 가수들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인정을 넘어 찬사를 받을 정도입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대단한 가수가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낄 만하며, 외국의 보컬리스트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도 자주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어마어마한 재능을 가진 임재범에게도 아픈 가족사와 파란만장한 인생이 숨겨져 있어, 그 역시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는 연민을 자아냅니다. 최근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더더욱 궁금해지는데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임재범은 인간적으로 어떤 사람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임재범에게는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가슴 아픈 가족사가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 임택근 씨는 과거 유명한 아나운서였는데요, 첫 번째 결혼에서 자식을 얻지 못하자 결국 외도를 하여 자식을 낳았습니다. 그 외도로 낳은 자식이 임재범이고, 다른 외도에서 태어난 자식이 손지창입니다.

즉, 임택근은 한 사람이 아닌 두 명과 외도를 하여 자식을 낳았고, 전처와 이혼한 후 재혼한 여자는 이 두 명 중 한 명도 아닌 또 다른 새로운 여자와 재혼했습니다. 이후에야 임재범을 호적에 올렸다고 합니다. 임재범의 생모는 임재범이 1살일 때 일본으로 떠났고, 유명한 아나운서 아버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재범은 어린 시절 고아원과 할머니 집을 전전하며 자랐습니다. 나중에 임택근이 임재범을 맡아 키우게 되었지만, 임재범은 어린 시절 따뜻한 어머니의 품을 그리워하며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손지창도 생부 임택근에게 비참한 경험을 했습니다. 임택근은 손지창을 끝까지 아들로 인정하지 않다가 소문이 나고 기자들이 알아차리자 그제서야 아들로 인정했습니다. 임택근은 76세에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가 버스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되었고, 2020년 89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임재범은 어린 시절을 고아원과 할머니 집에서 보내며 자란 탓인지, 성인이 되어서도 늘 불안하고 괴팍한 성격을 보였습니다. 평소에는 점잖고 조용하다가도 화가 나면 야수처럼 변한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임재범에 대한 여러 가지 루머가 돌았지만, 그의 지인들은 임재범을 매우 다르게 평가합니다. 기타리스트 김도균은 “임재범은 평소 양처럼 순하지만, 너무 바르고 교과서적인 사람이다. 세상 일이 교과서처럼 되지 않으니 그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마찰이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손지창 역시 형 임재범에 대해 “괴팍하다는 소문과 달리 형은 다정하고 천재적인 사람이다”라며, “너무 순박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점이 아쉬웠다”고 밝혔습니다. 가수 윤도현과는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친밀했고, 다른 후배 가수들도 임재범이 겉으로는 무섭고 카리스마가 넘치지만 속마음은 따뜻하고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임재범은 초등학교에 3~4년 늦게 입학했다고 합니다. 중학교 시절까지는 밝고 쾌활했으나,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후부터 점차 엇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서울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가수가 되기 위해 학교를 중퇴했습니다. 이후, 임재범은 가수 김수철에게 노래를 배우며 음악에 열정을 쏟았다고 합니다.

임재범은 원래 미성이었지만, 록 음악을 하며 그의 목소리는 강렬한 포효로 변해갔습니다. 임재범은 1986년 록그룹 시나위의 보컬로 데뷔해 “크게 라디오를 켜고”로 유명세를 얻었습니다. 이후 솔로 가수로 전향해 1989년 첫 솔로 앨범을 발표했으나, 자신을 배신자라며 괴로워했습니다. 락 팬들에게는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았고, 그로 인해 큰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됩니다.

임재범은 앨범 활동 중에도 여러 차례 잠적을 반복하며 마음의 고통을 겪었고, 가수로서의 성공과 자존심 사이에서 갈등했습니다. 1999년, 뮤지컬 배우 송남영을 만나 결혼했고 딸도 태어났지만, 그의 정신적 상태는 점점 악화되었습니다. 임재범은 심각한 우울증과 생활고에 시달렸고, 아내는 조용히 그의 곁을 지키며 그를 도왔습니다. 임재범은 성경책을 읽으며 마음의 평화를 찾았고, 이후 다시 음악 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습니다.

2011년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며 재기에 성공한 임재범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임재범의 아내가 갑상선암, 위암, 간암, 자궁암 등 4개의 암을 진단받았던 것입니다. 그는 아내의 투병으로 큰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임재범의 인생은 소리꾼으로서의 명성과 동시에 깊은 고통과 시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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