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천호진의 모친이 오늘 세상을 떠났다는 가슴 아픈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현재 그는 동인천 요원 장례식장 101호실에 마련된 빈소에서 조문객들을 손수 맞이하고 있습니다. 모레 오전 5시 30분에는 장례식이 진행되어 부평승 화원에 안장될 예정입니다. 이로써 2020년에는 부친을 잃은 아픔에 이어 또다시 가족을 잃게 되었습니다.
천호진은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어린 시절에는 형편이 어려워 힘든 삶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렇지만 잘 살라는 기원과 뒷바라지로 한결같이 힘들었던 시간을 지켜봐 주셨습니다. 특히 천호진은 어릴 적 13살 때 어머니의 인도로 클래식 기타를 배우러 간 경험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그의 뛰어난 연주 실력이 발휘되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에는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서 선보인 수준급의 기타 연주로도 유명했던 천호진은 현재는 모친의 떠남으로 깊은 슬픔에 빠져 있습니다. 어머니의 남편이자 천호진의 아버지였던 분은 한 시절을 풍미했던 프로레슬러 천규덕 기밀 장영철과 함께 60에서 7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1세대 프로레슬러입니다. 기밀은 박치기가 그의 특기로 선그더그는 당수치기가 그의 특징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의 강한 체력과 무기력한 상대를 맨손으로 제압하는 능력은 당대의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당시에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프로레슬링이 큰 인기를 끌었던 시기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천규덕은 한국 선수로서 일본 선수를 상대로 펼쳐진 경기에서 통쾌한 승리를 거두며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었습니다.
그의 업적은 당시 프로레슬링 팬들 사이에서 큰 환호를 받았고 영웅적인 모습은 그의 아들인 천호진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천규덕은 그의 유명세로 영화에도 몇 차례 출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배우로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지만 자신의 아들인 천호진이 연기 활동을 시작하면서 반대의 태도를 취하게 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아들의 연기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졌는데 이는 자신의 성격이나 행동이 반영될까 봐 걱정하던 천규덕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천호진이 아들의 연기 실력을 입증하자 그는 나중에는 자랑스러움을 느끼며 아들의 연기 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게 되었습니다. 천호진은 사실 처음부터 성공적인 스타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MBC 공채 탤런트로 선발되어 연기자로 데뷔했지만, 초창기에는 작은 조형 단역으로 출연하며 경험을 쌓아야 했습니다.
아버지인 천규덕의 아들로서 항상 그의 그림자를 따라다녔으며 처음 몇 년 동안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천호진은 수년간 단역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작품에 참여하며 자신의 연기 실력을 키워나갔습니다. 특히 대추나무 사랑 관련 내에서 농촌 청년 황대처를 연기하면서 그는 많은 시청자들에게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운동 능력을 이어받아 중학교 때는 야구를 하고 고등학교 때는 럭비 선수로 활약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태권도 사 단과 유도 삼 단 골프 승마 암벽 등반 등 다양한 스포츠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 만능 스포츠맨으로 불렸습니다. 이러한 운동 능력 덕분에 국내에서는 그의 날렵한 액션 연기도 눈에 띄게 일품이었습니다. 그는 영화 죽이고 싶이라는 에서 주연으로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그는 병원에서 몇 달째 누워있는 환자의 역할을 맡았는데 해당 역할은 단신불수를 겪은 환자를 연기해야 했습니다. 그의 다리는 그동안의 다양한 운동으로 단단한 근육질이었지만 감독은 처음에 그의 캐스팅이 환자 역할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완성되고 개봉된 결과 관객들은 천호진의 연기에 몰입하면서 다리에 대한 불평을 하지 않았습니다.
천호진은 연기력으로만큼이나 뛰어난 모습을 선보여 반신불수 환자의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냈습니다. 그러나 천호진은 성공적인 배우로서의 길에도 시련이 닥쳤습니다. 현재는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고 있지만 한때는 충무로 영화계에서 10년간 활동 하지 못하고 어려운 시기를 겪었습니다.
배우로서의 삶은 주연배우와 스타만이 충분한 대우를 받는 반면, 조연들은 출연료가 많지 않아 생계유지가 힘들었던 때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TV 드라마는 한 번 캐스팅이 되면 고정적으로 꾸준히 출연료가 나오기 때문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그는 어쩔 수 없이 약 10년 동안 드라마에 집중적으로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데뷔했을 때는 돈에 대한 걱정 없이 영화에 찍었지만 결혼하고 둘째, 아이까지 생겨 가족 생활을 걱정해야 했고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드라마 출연을 선택했습니다. 그리하여 드라마에서는 꾸준한 출연료가 들어와 생계를 유지하는 동안 영화판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선택은 경제적인 안정을 추구하면서도 가족을 지키기 위한 책임감으로 이어졌습니다.
경제적으로 자리가 잡히고 돈에 대한 걱정이 덜어지면서 다시 영화에 출연할 수 있게 된 천호진은 큰 기쁨과 자부심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는 영화 촬영 중 자신이 등장하지 않는 날이면 현장에 나오지 않아도 되도록 했습니다. 또한 등장하는 장면을 찍는 날에는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는 연기에 집중하기 위해 자신을 방해하는 요소를 사전에 차단하고자 한 결과였습니다.
천호진은 어릴 적부터 예민하면서 내성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인터뷰에서 웃는 것을 거절하고 자신을 솔직하게 담아달라는 사진 기자의 부탁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석에서도 말수가 적고 다른 사람을 만나도 꾸미는 말은 하지 않으며 자신도 말이 많고 재미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만 타고난 성격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드라마 속에서 가족을 중시하는 아버지 역할로 자주 등장했던 천지는 3년간의 열애 끝에 결혼한 아내와 현재 20대가 된 일 남일 녀 자녀를 둔 가정의 가장으로 선언되었습니다. 그는 자녀들에게 국내에서 꼭 대학에 가야 한다는 압박을 주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찾도록 지원하는 방식의 아버지로서 알려져 있습니다. 자신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 살아왔기 때문에 자녀들에게도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자유로운 선택을 허용하고자 하는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배우로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목공을 취미로 즐기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것을 만드는 것을 좋아해 손재주가 뛰어났던 천호진은 목공을 시작한 지 25년이 넘었는데 현재는 전문가 수준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목공을 시작한 계기는 과거 일이 없던 시절에서 시작되었는데 연예인으로서 불안정한 직업에 대비하기 위해 목공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천호진의 아내는 남편이 목공을 취미로 즐기는 것을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남편 이 만들기는 잘 만들지만 과정이 너무 오래 걸려서 차라리 하나 삽시다라고 말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천호진은 생활목공에 가구 회사를 차리고 직원들을 두고 운영할 정도로 목공에 열중했습니다. 촬영이 없는 날이면 거의 매일 나와 작업을 하고 출퇴근도 직원들과 같이 했다고 합니다.
그는 나무를 만질 때 뿌리를 받아서 작품이 나올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굉장히 길다고 말하며 나무 작업이 연기하는 것으로는 달라 보이지만 사실은 굉장히 비슷하다고 설명합니다. 목공을 독학하며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초보자들이 목공을 할 때 겪는 실수를 줄이고 싶은 마음에서 교제 없이 목공예를 스스로 배웠습니다.
그는 목공예 작업이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형태의 작품을 만들기까지 기다림 없이는 아무도 처음부터 완벽한 작품을 만들지 못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는 초보자들을 위한 목공 책도 편하고 목공을 통해 다양한 어려움을 극복하며 전문가로 성장했습니다.
배우로서의 경험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고 나무 작업을 통해도 사람을 생각하는 일이라고 밝히며 한 드라마 촬영 중 낙마사고를 당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는 이전에도 드라마 촬영 중 낙마 사고를 당해 큰 골절상을 입은 적이 있어서 사고 위험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뛰어난 운동 신경으로 낙법을 사용하여 사고 위기를 모면하게 되었습니다. 2017년과 2020년에 연기 대상 수상한 배우 천호진은 최고의 시대 청류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인 천규덕의 지병으로 대중과 작별하며 대상 수상소감에서 아버지의 감상과 눈물의 이별을 나누었습니다. 초기에는 아들 배우 반대했던 아버지는 후에 전폭적인 지지를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MBC 드라마 촬영 중 어머니까지 잃어 이제는 천호진과 동생 천수진만이 부모님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천호진에게 위로를 보내며 어머니에게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