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장군의 아들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박상민은 고생 한 번 하지 않고 자란 탓인지 꾸준히 사건사고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법정을 들락거려야 했고 그런 과정을 겪으며 건강도 잃었습니다. 심지어 정신 이상을 겪으며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누군가를 해칠 뻔도 했습니다. 곱상한 외모와는 달리 거친 인생을 살아온 박상민에게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1970년생 박상민은 부유한 의사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넉넉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두 형은 아버지를 따라서 의사가 되었는데 유독 막내아들이었던 박상민은 공부에 관심이 없고 운동에만 소질이 있었습니다. 운동신경이 좋은데다가 사고뭉치 기질이 있었던 박상민은 학창시절에 사고를 매우 많이 쳤었고 그럴 때마다 가족들은 걱정이 많았습니다.
특히 박상민은 중학교 이 학년 때부터 술과 담배에 손을 댔는데 방황을 심하게 한 탓에 선생님께 늘 아버지 형들은 안 그런데 넌 왜 그러니라는 말을 듣고 자랐습니다. 동네 아이들과 매일 치고받고 싸우던 박상민은 90년 영화 장군의 아들로 연예계에 데뷔했습니다. 당시 장군의 아들을 연출한 임권택은 주인공 김두환 역에 새롭고 신선한 인물을 내세우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당대 스타들을 기용하기보다는 신문의 배우 모집 공고를 내서 그에 걸맞은 배우를 뽑고자 했습니다. 이 오디션에는 800명이 넘는 지원자가 있었는데, 인권택은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의 배우를 찾지 못했습니다. 임 감독은 우수에 찬 곱상한 얼굴을 가진 인물을 원했으나, 오디션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무술의 일가견이 있는 우락부락한 외모를 지녔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지원했으나, 그중에도 원하는 인물이 없자 인권택은 평 평소 알고 지내던 서울예대 교수에게 마땅한 배우가 없겠느냐며 고민 상담을 했습니다. 인권택의 이야기를 들은 교수는 당시 새내기였던 박상민을 추천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박상민은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고 장군의 아들 오디션을 보게 되었습니다. 20살 성인이 되자마자 바로 박상민은 거장의 작품에 출연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것도 남자 주인공으로 말입니다. 박상민은 연기 경력은 없었지만 감독이 원하는 인물에 들어맞았습니다. 우수의 찬 눈빛을 가진 곱상한 외모였고 수영과 육상을 한 경력이 있는 만큼 몸도 다부졌습니다. 하지만 박상민은 앞선 의혹에 실수하고 마는데 인권택에게 무술 경력이 있다는 거짓말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박상민의 거짓말은 어설픈 무술 시범으로 금방 들통이 났는데 감독은 이를 보고 대놓고 거짓말을 한다며 비난을 했습니다.
박상민은 매우 자존심이 상한 것은 물론 망했다는 생각에 망연자실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그에게는 이 차 오디션의 기회가 주어졌고 박상민은 수영과 육상 경력만 있다고 고백하며 오디션에 솔직히 임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박상민은 장군의 아들 주연을 맡게 되었는데 영화가 대박이 나며 역시 엄청난 인기를 얻었습니다.
장군의 아들은 총 세 편까지 나올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는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본격 시도된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라 할 수 있는데, 여러모로 국내 영화계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특히 배우 대부분을 오디션을 통해 새로 뽑았기에 한국 영화배우들의 세대 교체가 이뤄졌습니다. 신현준 이일제 김승호 김영일 등이 영화 덕을 톡톡히 봤는데 그중 최고의 수혜자는 박상민이었습니다. 박상민은 웬만한 배우들도 받기 힘들다는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을 1990년 1991년 이 년 연속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청소년들에게 영웅처럼 섬김을 받으며 인기몰이를 했습니다. 박상민은 그때 심정을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되어 있었다고 표현했는데 정말 순식간에 그는 톱스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박상민은 전 국민이 아는 얼굴이 되었어도 욱하는 것을 참지 못해 여러 번 시비거는 행인들과 몸싸움을 했습니다. 심지어 한 번은 인적 없는 한밤중 불량배 여러 명이 시비를 거는 바람에 싸우다가 진짜 위험한 상황에 부닥칠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한순간에 스타가 된 그는 소위 말하는 연예인 병에 걸려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악명을 떨쳤습니다. 특히 95년 안성기 김혜수와 남자는 괴로워를 촬영할 당시 제작사의 억대의 출연료를 요구하고 어린 제작진에게도 갑질을 하다가 이명세 감독에게 죽도록 뺨을 맞았다는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이렇게 박상민은 좋은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이를 잘 활용하지 못하고 아쉽게도 장군의 아들 이후로는 자신을 빛나게 할 작품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활동 부진했던 연예계 생활과는 별개로 부동산 쪽으로 돈을 많이 벌어서 여유로운 삶을 이어나갔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자동차를 타는 연예인으로 유명한데 전 세계적으로 단 몇 대밖에 없는 람보르기니 디아블로 한정판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일각에는 그가 어마어마한 재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연예계 생활을 설렁설렁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의견도 냈는데 그런 소리가 들려올 만큼 박상민은 활동 중 논란을 많이 일으켰습니다. 우선 그는 세 번이나 음주운전에 적발된 적 있습니다. 1997년 1999년 그리고 2011년입니다. 6,7년 음주운전으로 처음 적발되었을 때 뇌물 공여 혐의까지 같이 발각되었습니다.
그는 97년 8월 신사동에서 음주운전 중 접촉사고를 내고 달아났다가 경찰에 붙잡히자 피해자에게 2000만 원 그리고 목격자와 경찰에게 각각 500만 원씩을 건네고 사건을 무마시켰습니다. 참 뻔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후에도 그는 두 번이나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아 거센 비난을 받았습니다. 또한 그는 결혼과 이혼으로도 세간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2007년 박상민은 영어 전문가 한나래와 결혼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했습니다. 공식적인 이혼 사유는 여느 연예인이 그렇듯 성격 차이였는데 실제로는 중국집을 운영하는 것 등과 관련해 서로 의견 차이가 심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부부는 무려 5년간이나 이혼 소송을 했는데 박상민은 아내가 시어머니를 제대로 모시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한신은 박상민이 자신을 때렸다며 맞고소하는 추태가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소송은 2014년에 마무리되었는데 서울고등법원은 박상민 85% 한시 15%로 재산을 분할하라고 확정 판결했습니다. 또한 아내를 때렸다는 혐의로 박상민은 벌금형을 받았는데 훗날 아내에게 손을 휘두른 장면을 재현해서 논란이 된 적도 있었습니다. 2015년 말 박상민은 EBS 리얼 극장에서 이혼에 이르게 된 사연을 털어놨습니다.
그는 800억 자산가였던 아버지가 하루아침에 돈을 탕진한 충격으로 어머니가 쓰러졌는데 아내가 3개월 동안 한 번도 병문안을 가지 않았고 때문에 말다툼을 하다가 손찌검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거기다가 이야기를 하면서 뺨을 때리는 동작을 했는데 이 장면의 시청자들은 유례 없는 불쾌감을 드러냈습니다. 보기 민망하네요. 보다가 무서웠습니다. 때린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사연은 안타깝지만 굳이 재현할 필요가 있나 싶네요.
표현 방법이 거칠었던 것에 대해 불쾌함이었는데. 박상민은 그런 상황을 여과 없이 전달할 만큼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었던 상태였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정신과 치료를 받았는데 의사 선생님이 당장 병원에 입원하지 않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누군가를 죽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어요.
그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던 것인데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증세가 완화되었는지 박상민은 2019년 모임에서 만난 11살 연하의 일반인과 재혼에 살고 있습니다. 그는 결혼 전 종합 검진에서 림프종을 오진 받은 것을 계기로 건강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세 사람이 되었다고도 밝혔습니다. 앞으로는 박상민이 더 이상 논란의 주인공이 되지 않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