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어머니의 빈소에 많은 스타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운 우리 새끼에 함께 출연 중인 김준호와 김종민 김종국의 빈소를 찾아왔고 JTBC 아는 형님의 함께 출연 중인 강호동도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으며 외에도 예능 개동료인 유재석 지석진 이경규 하아 등이 시간을 내서 빈소를 찾아와 슬픔에 빠진 이상민을 위로 했는데요.
이상민의 어머니 고이묘순녀사의 빈손은 서울 연세대 신촌 장례식장 6호실에 마련된 가운데 상주는 이상민과 누나인 이성경이며 발인은 오는 7일 오전 6시 장지는 서울시립승화원에서 진행된다고 합니다. 이상민의 어머니는 보험왕을 했을 정도로 오랜 시간 보험업에 종사했지만, 30개 넘게 가입한 보험들 중 대부분 수당을 많이 받는 보험을 들었다 보니 실질적으로 청구에 받을 수 있는 보험이 거의 없었고 이마저도 80세가 넘으며 재갱신하는 과정에서 해약하면서 2000만 원을 받았다. 받은 게 전부였다고 합니다. 사실 이상민은 지금 시대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가족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본처가 아니고, 즉 둘째, 부인이었고 아무래도 자신의 집이 아버지에게는 메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아버지의 얼굴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태어났을 당시 매우 어려웠던 형편 탓에 이 년간 호적에 등록되지 못하면서 이 애기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밝히기도 했던 이상민은 5살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이후 중 삼 때는 충격적인 일까지 겪게 되는데요.
하루는 친구가 명절에 왜 아버지 산소를 찾아 차례를 안 지내냐 어머니께 이유를 물어보니 우리는 교회에 다녀서 아버지 산소를 찾지 않는다라고 변명했다고 합니다. 이에 이상민은 길을 물어물어 친구와 함께 일산에 위치한 아버지의 산소를 찾아갔다가 거기서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어렵게 찾은 아버지의 비석에는 다른 형제자매의 이름은 있었지만 자신의 이름은 안 보였는데요. 당시 방황하던 청소년 시절을 보냈던 이상민은 창피하고 속상한 마음에 모수로 비석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으려고 애쓰기도 했습니다.
아들의 이런 방황을 일찍 눈치 챌 어머니는 세 가족이 함께 있는 사진을 합성해 액자로 만들기도 했으며 자식들을 위해 장사와 보험 판매 등 가리지 않고 억척스럽게 돈을 버셨다고 합니다. 이상민의 어머니는 아프시기 전까지 보험 영어방으로 혼자 전라도 곡성까지 장거리 운전도 하시며 열정적으로 전국을 누비셨던 분이셨는데 어느 날은 아들인 이상민에게 전화를 해 몸이 안 좋다는 말을 했고 이때 이상민은 어머니의 발음이 평소와 다르게 이상함을 느끼고 급히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그는 처음엔 어머니가 뇌가 안 좋아서 입원을 하셨는데 병원에서 수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혈소판 수치가 감소해 혈액 문제부터 고쳐야 한다고 했다는데요. 분야의 권위자를 찾아갔지만 1년간 고칠 방법을 못 찾다가 다행히 좋은 주사를 만났는데 네 1주일에 한 대 맞는 주사 값이 무려 150만 원이었다고 합니다. 그걸 맞으면서 수술을 한 끝에 다행히 상태는 호전되었고 1년 6개월 만에 뇌수술을 마치고 퇴원을 했다는데요.
그렇게 건강상의 이유로 잠시 프로그램을 떠났던 이상민의 어머니는 2018년 1월 다시 미우새의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얼마 못 가 어머니는 그만 무리하게 운동을 하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허리를 다치셨고 그렇게 또다시 병석에 눕게 되었는데요.
이후 다시 병원에 거의 누워 있어야만 했고 게다가 연세도 있다 보니 다수의 합병증들이 생겨나면서 결국 이러한 일들로 움직이기조차 힘든 상황 끝에 급기야 최근에는 치매까지 앓아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근 방송에서도 이상민은 팔순이 넘으신 어머니의 상태가 점점 악화되더니, 어머니가 자신을 못 알아본다고 전하기도 했고 병원비가 한 달에 1000만 원씩 든다고 설명하기도 했으며 수년을 투병한 끝에 위독해진 상황임을 공개해 모두의 마음속을 애잔하게 만들었었는데요.
어린 시절 아버지도 없이 자랐지만 어려운 상황 속에서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다짐 끝에 그룹 룰라로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 이상민은 가수로 성공했을 당시만 해도 통장에 무려 현금 48억이 있었다고 밝히며 그야말로 잘 나가는 연예인 중 한 명이었습니다. 게다가 프로듀싱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였던 그는 1990년대 말부터는 본격적으로 제작자로 나서서 상마인드라는 기획사를 설립하여 컨츄리 꼬꼬와 샤크라 샵 등을 성공시켜 정상급 프로듀서로 이름을 알렸는데요.
당시는 현재만큼 정확한 정산이 이뤄지지 않았던 시기였음에도 저작권료로만 수억 원을 벌었고 그가 손대는 곳마다 승승장구 탄탄대로였습니다. 이렇게 프로듀서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면서 이해영과 결혼한 그는 모두가 인정한 성공한 삶을 살았지만 이후 엄청난 투자를 했던 신인 그룹들이 연이어 실패하면서 20억 빚이 생겼고 이에 그는 외식사업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국내 최초로 식사를 하며 격투기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곳이었고 127억 원이 투자된 프로젝트였으며 처음에는 라스베거스 요점을 계약까지 할 정도로 분위기가 좋은 듯했습니다. 하지만 경기 중에 불의의 사고로 선수가 사망해 영업장은 문을 닫는 것뿐 아니라 적지 않은 피해 보상금과 계약 파기 등을 겪었고 경찰 조사까지 받게 되었죠.
특히 이상민을 빚더미에 앉힌 주요 인물 중 한 명이 화제인데 공동 투자자였던 속친 김 사장이라 불리는 이 인물은 이상민이 믿고 따랐지만 투자금을 들고 잠적하면서 그야말로 처참하게 망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2005년 11월 최종 부도처리되고 이상민은 70억이라는 엄청난 빚을 떠안게 되었는데 사실 70억이면 일반인이라면 진작에 포기했을 겁니다. 게다가 당시 가족 채무까지 48억 원가량 있었다고 하니 아마 웬만한 연예인이라 해도 갚을 엄두가 나지 않는 금액이죠. 하지만 이상민은 파산 신청을 안 하고 빚을 갚기로 택했는데요.
열심히 빚을 갚으려는 모습과 이상민의 이러한 사정을 알아서 그런지 몰라도 방송계에서는 오히려 이상민을 더 많이 써주게 됩니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건 아니었습니다. 처음엔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생활을 시작하며 20여 일이나 빚쟁이를 피해 차 안에서 이온 음료만 마시고 버티는 나날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그는 이해연과 8년 애연의 끝에 결혼했다가 이혼하게 되는데 당시 두 사람의 결정적이 혼 사유는 이상민의 빚이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인 이혼 사유에 대해 이혜영의 어머니가 한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전환 내용이 있었는데요. 이해영의 어머니는 이상민이 내일 새벽통이 터서야 집에 들어오는 등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고 사업 확장으로 이해형을 불안하게 만드는 등 사업 소문에서도 신뢰를 주지 못했으며 이혜영은 아이를 빨리 낳고 싶어 했으나, 이상민이 결혼 후 아이 문제를 회피해 실망을 줬다고 하는데요.
훗날 이상민도 이해영과 이혼을 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을 자신이 가정보다는 일에 치중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하며 자신의 잘못임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렇게 이혼과 회사 부도까지 모든 게 한꺼번에 겹쳐 삶에 대한 의지조차 놓고 싶었을 당시에 이상민이 유일하게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만 바라보는 엄마가 있었기 때문이었는데요.
어머니는 그에게 상민아 네가 버틸 수 있다면 버텨라 이렇게 해서 강해질 수 있으면 살아달라고 간절하게 호소했다고 합니다. 이때 이상민은 이 세상에 단 한 명이라도 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보다 더한 시련이 와도 견뎌내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과거의 삶을 진지하게 만성한 그는 2012년 음악의 신이라는 프로로 복귀해 연달아 여러 예능에 캐스팅되며 방송인으로 다시 한번 재개에 성공하게 되었고 12년간 80개가 넘는 예능을 출연하며 현재 본인의 빚을 거의 다 갚았다고 하죠.
그런데 이런 기쁨도 잠시 이제 좀 어머니와 부족했던 시간을 가지며 효도를 하고 싶었지만 시간은 오래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이번 일만 끝나면 이 일만 마저 청산하면 몇 년만 있으면 했던 것이 그만 어머니는 기력이 약해지고, 이제는 돌아오지 못하는 먼 길을 가시게 된 것인데요.
그래도 다행인 건 어머니를 모시고 첫 해외여행으로 태국을 다녀왔던 것이 지금에 와서 보면 이상민에게 한편으론 위안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는 말하길 어머니가 아프셨다가 잠깐 괜찮아지셨을 때 처음으로 태국으로 해외여행을 같이 갔다 태국에서 휠체어 타고 다니셨는데 많이 좋아하시더라 사진도 많이 찍었다 라며 태국 여행을 하면서 기뻐하던 어머니를 회상했는데요.
비록 이상민이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하루라도 빨리 좋은 처자를 만나 결실까지 맺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아버지의 존재에 대한 상처 많은 어린 시절을 보낸 그가 어쩌면 아이를 갖고 부모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재혼을 지금까지 주저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오랜 연애 끝에 결혼한 이혜영과의 결혼 생활마저 1년이 조금 넘는 짧은 시간에 정리가 되었기에 어머니와 부족한 시간을 보낸 것 역시 여러모로 죄송한 마음에 더 다가가기 힘들었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모쪼록 비보를 당한 이상민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하고 오래 투병하신 어머니가 하늘에서는 편히 쉬시기를 바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