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프로농구 선수 정재홍를 알고 계신가요? 정재홍 선수는 33세의 나이에 심정지로 세상과 이별했습니다. 정재홍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이 전해져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었습니다.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정재홍 선수는 1986년 1월 26일, 인천에서 태어났으며 키 178cm, 체중 78kg으로, 인천 신흥초등학교, 송도중학교, 송도고등학교, 동국대학교 체육교육학과 학사를 거쳤습니다.
생전의 포지션은 포인트 가드. 3점 슛 성공률이 상당히 높았던 데다가 개인기가 좋았고 돌파력도 포인트 가드 중에서 준수한 편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스킬트레이닝을 사비로 배워왔을 만큼 농구에 대한 열정이 아주 높았고, 웃을 때 잇몸이 매력적이었으며 팬 서비스가 좋은 선수로도 유명했습니다.
2008년 대구 오리온스에 전체 6번으로 지명되었고 그해 김강선과 함께 김승현의 백업가드를 맡았습니다. 주전보다는 주로 2옵션으로 많은 활약을 했으며, 2012-13시즌 종료 후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의 이현민이 고양 오리온스로 이적할 때, 반대급부로 지목되어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로 이적하였으나, 두 시즌 후 오리온스로 복귀하였습니다. 트레이드가 아닌 2013-14시즌, 2014-15시즌, 두 시즌 동안 임대하기로 거래가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이후 2015-16시즌을 앞두고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로 복귀했는데, 고양 오리온의 포인트 가드였던 조 잭슨과의 재계약이 불발되어서 실질적으로 팀 내 유일한 1군급 포인트 가드로 경기를 지휘했습니다. 특히나 4라운드부터는 스킬트레이닝의 효과가 발휘된 것인지, 간간이 뛰어난 돌파력을 보여주어 오리온스 팬들을 즐겁게 해 확실히 예년에 비해 기량이 상승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2017-18시즌을 앞두고 FA 자격을 얻어, 서울 SK 나이츠가 3년 계약으로 영입하기도 하였습니다.
김선형이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대신 포인트 가드로 출전하여 괜찮은 활약을 보였습니다. 팀 전체의 성적이 좋지 않으면서 정재홍도 비난받았으나 그의 부활을 믿는 팬들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 시즌이 그의 마지막 시즌이 될 줄은 SK 팬이나 타 팀 팬들은 아무도 몰랐었습니다. 정재홍 선수는 손목 골절로 인해 세브란스병원에서 손목 수술을 받기로 예정되어 있어 이날 오후부터 병원에 입원했었다고 합니다.
이후 오후 6시에 담당의와 상담을 마치고 저녁 식사 이후, 5인 병실에서 휴식하던 중 갑자기 심장마비가 발생해 심정지 상태로 의식을 잃은 채 오후 7시쯤에 환자들의 상태를 확인하러 온 간호사에게 발견됐고, 이후 3시간가량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지만, 결국 밤 10시 40분경 사망 판정을 받았습니다. 부검 결과 사인 불명으로 나왔으며 사실상 심장마비로 보입니다. 수의로 그가 사랑했고 열정을 쏟았던 농구 유니폼을 입고 하늘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특히 많은 농구팬이 좋았던 그의 인성과 팬들을 대하는 자세를 생각하며 안타까워했습니다.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정재홍 선수 덕에 행복했습니다.”, “그곳에서 행복하게 지내세요.”, “코트에서 열정적이었던 모습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등의 애도 글이 올라왔다고 합니다.
특히 진정한 프로다운 자세와 훌륭한 인성 덕분인지 팬들은 그의 사망 소식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으며, 너무나도 안타까워하였습니다.
그를 조문하기 위해 전 소속팀이었던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추일승 감독 이하 선수단이 왔으며, 전태풍, 애런 헤인즈, 자밀 워니, 이현민, 박상오, 김영환, 조성민, 강병현, 오세근 역시 빈소를 찾았습니다. 이후 SK의 모든 선수가 터리픽 12에 정재홍의 번호 30번과 이니셜 JH를 새기고 경기에 임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정규시즌에는 With J. H.라는 문구가 유니폼의 목부분에 새겨졌으며, 또한 SK의 홈 개막전 경기 시작 전에도 정재홍의 죽음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사망 당시 등번호인 30번은 이 시즌부터 임시결번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프로농구 서울 SK 선수들은 마카오에서 열리는 동아시아슈퍼리그에서 특별한 유니폼을 입고 있었습니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故 정재홍을 기리기 위해 유니폼에 그의 등번호 30과 영문 이름 약자 JH를 새겨져 있었습니다. 당시 문경은 감독은 정재홍을 떠올리며 한참 동안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꼭 정상에 올라 우승 반지를 가지고 재홍이를 찾아가고 싶다”라고 어렵게 말했습니다. 문 감독은 정재홍의 소식을 듣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의료진이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는 것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고 합니다.
“옛날 일이 생각났다. 1999년 10월 당시 삼성 코치였던 김현준이 출근길에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라며 문 감독은 당시 삼성 선수였고 정신적 지주였던 그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문 감독은 “장례식장에서 매일 울기만 했던 것 같다. 형수님, 두 딸과도 매우 친해서 자주 보는 사이였는데”라며 “누워있는 재홍이를 보고 그때 생각이 났다. 한없이 눈물이 흐르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다.”라고 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