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가족을 위해 희생했건만…. 하늘도 무심하지” 가수 김흥국 전재산 탕진 후 딸도 외면…. 최근 전해진 처참한 근황

김흥국의 인생은 항상 즐거웠습니다. 그는 기러기 아빠로 13년 이상을 지냈지만 언제나 흥겨운 모습으로 지내려고 노력하였는데 미투 사건이 터진 후 그의 인생은 꽤나 많이 달리진 것 같습니다.

최근 아이 콘택트에 출연해 그의 근황을 알 수 있었네요.

김흥국 꽃뱀 이후 근황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최근 그는 유튜브 채널도 개설하여 2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어엿한 유튜버 연예인이다. 유튜브 개설일은 2019년 5월 29일이다.

서울 종로 낙원상가에서 하루하루 벌어먹는 무일푼 밴드로 음악가 인생을 시작했다. 당시 밴드 이름은 모대장성으로 김흥국은 밴드의 드러머였다.

라디오스타에서 한 회고에 따르면 어머니가 말하기 갓난아기 때부터 젓가락으로 식탁을 리듬감 있게 내리쳤다고 예능이나 라디오에서 이들 드러머 시절 이야기로 가끔 개그를 친다 1986년에 일 집을 내고 본격적으로 데뷔했다.

1988년 2월 15일 MBC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인간 시대에서 불치병에 걸린 소녀의 에피소드 정아의 겨울1기가 있었는데, 작곡가인 소녀의 아버지와 친분이는 무명가수로 처음 티비를 탔다 김흥국은 에피소드에서 소녀를 격려하기 위해 정아라는 노래를 자 작게 불렀다 이후 이것 덕분인지 TV에 신인 가수로 출연하기 시작했다.

이 노래는 상당히 조용한 분위기의 발라드로 김흥국의 대표곡인 호랑나비와는 정반대의 분위기이다.

김흥국은 늘 무대에서 담담한 표정의 분위기 잡고 통기타를 치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 안타깝게도 소년은 1990년경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런 사연으로 방송을 타게 되었지만 그를 스타덤에 올라 모르게 한 것은 상당히 컬트적 느낌이 나는 댄스곡 호랑나비다 호랑나비라는 노래 하나로 가요톱십에서 골든컵을 수상했으며 이후 그가 마르고 닳도록 예능해서 우려먹는 10대 가수 자리에 올랐다.

이후 어린이 영화 반달 가면으로 심용래와 함께 어린이계의 아이돌 자리에도 당당히 오르기도 했다.

이때부터 라디오 방송을 시작하면서 예능인으로도 이름을 알리게 된다.

다음 앨범에서 59년 왕십리를 발표했는데 호랑나비와는 달리 제법 세련되고 지극히 제대로 된 콘셉트에 명곡이어서 꽤 호평을 받았다.

어느 정도냐면 이 노래를 처음 접하는 사람 중에는 김흥국 노래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정말 김흥국이 부른 게 맞냐는 반응도 있을 정도다 원래는 가수 김남화가 1987년에 광십리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노래로 김흥국의 곡과 비교하면 가사 일부가 다르다 이렇게 정상적인 노래들로 다시 한번 히트를 치고 베스트 앨범까지 내면서 1993년까지 가수 인생 최저 전기를 달리던 도중 1993년에 김건모의 레게곡 핑계가 큰 인기를 끌자 나도 레게곡으로 한번 떠보자며 성인들을 위한 레게 음악을 모토로 타이틀곡으로 레게 파티를 내세운 앨범인 나스트 레게일을 1994년에 내놓기도 했다.

김흥국은 어록 제조기로 유명한데 터보의 노래 사이버 러버를 시 버러버라고 하거나 UCLA 대학을 우크라 대학이라고 발언한 것 등 이 대표적으로 이에 대해 보니는 내가 모르는 노래나 가수가 나오는데 그냥 소리 나는 대로 읽었을 뿐이고 실수가 있어야 재밌다면 오히려 자랑스러워한다고 이밖에도 다양한 레전드급 방송 실수담을 보유하고 있다.

엄청난 축구 매니아로 유명한 김흥국은 연예인으로 인기를 얻고 나서부터 월드컵 때마다 항상 연예인 응원단을 조직해서 원정 응원을 해왔다고 한다.

연예인으로 인기를 얻은 게 89년인데 그다음 해인 1990 피파 월드컵 이탈리아 때부터 자비로 원정 응원단을 조직해 월드컵 원정 경기에 깻과리 치면서 응원을 주도하기도 했다.

왕십리턴이라는 엄청난 기술을 보유한 축구 잘하는 동네 아저씨이기도 하다 4일 아이콘텍트에는 팽현숙의 상대로 김흥국이 출연했다.

바로 씨가 그의 현재 상태에 대한 걱정으로 부른 것인데 혹시나 안 좋은 생각을 하게 되면 안 될 것 같아 부른 것이라며 부른 이유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는 이런 팽현숙에게 틀린 말이 없다. 저렇게 이야기해 줄 사람이 어디 있을까라며 고마움을 드러내기도 하였다고 한다. 김흥국 씨가 고생을 많이 하셨 것 같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예전에 흥겹고 멋진 모습을 되찾아 에너지 넘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한 집 가수 김흥국이 근황을 전했다. 6일 방송된 TV 조선 교양 프로그램 건강한 집에는 김흥국이 출연했다.

김흥국은 지난해 퇴행성 관절염 진단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축구 경기를 마친 어느 날 걷기가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후 가만히 있어도 무릎이 시큰하고 아팠다고 김흥국은 움직일 때도 무릎이 삐걱대 축구는 꿈도 못 꾸겠더라 라면서 병원에서 퇴행성 관절염 진단을 받았다고 전했다.

다행히 현재는 많이 호전돼 예전처럼 축구도 마음껏 할 수 있다고 전해 그런가 하면 한강 뷰를 품은 넓은 구조의 세 자택도 공개해 눈길을 모았다.

탁 트인 것이 정리정돈이 잘 된 모습과 깔끔한 인테리어 곳곳에 놓인 다양한 화초가 인상적이었다.

이런 그도 과거 꽃뱀 성폭행 논란에 휩싸인 바 있는데, 보험설계사 A는 김흥국이 자신에게 술을 억지로 먹게 한 후 강간했다고 주장했으나, 김흥국은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사이라 반박하며 사건은 점점 사를 키워갔다 당시 엄청난 미투 운동이 일고 있던 때인지라 김흥국에게는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었다 하지만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 놀라웠다 당시 A는 자신을 미대 교수라고 속여 김흥국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투자 명목으로 거액 7억 5000만 내 돈을 요구했는데 사짜임을 알았던 김흥국이 거절했던 것 이후 여러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면서 A의 주장은 신뢰를 잃어갔고 결정적으로 최근 A의 행적위 사건에 마침표를 찍게 했는데 그것은 놀랍게도 서로 다른 남성 두 명에게 혼인 빙자 사기 혐의로 피소되었다는 것이었다.

무슨 아침 드라마에 나올 법한 이야기인 줄만 알았는데 현실에서 보게 되다니 놀랍다 이후 김흥국의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잃어버린 그의 명예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후 김흥국은 사람을 만나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고 한다.

2021년 4월 24일 오전 11시 20분경 서울특별시 용산 항구 2000동에 위치한 사거리에서 SUV 차량을 운전하다가 신호를 어기고 좌회전하면서 역시 신호를 위반하고 직진하던 오토바이를 치고 도주한 혐의인데요.

충돌 뒤 쓰러진 30대 오토바이 운전자는 정강이가 찢어지는 등 전치 3주의 부상을 당했다고 합니다.

한편, 해당 사건의 블랙박스 영상이 공개되면서 또 다른 논란이 일어났는데요. 오토바이 운전자도 신호위반을 하고 김흥구께 차를 내로 치고 지나가는 모습이 포착되었습니다.

게다가 오토바이 운전자가 합의금 3500만 원을 요구했다고 김흥국 씨가 주장하면서 둘 중 누가 잘못한 것이냐에 대한 논란이 있기도 했는데요. 경찰은 적색 등에 비보호 좌회전을 한 김흥국의 신호 위반 과실이 큰 것으로 보고 혐의를 인정해 결국 검찰에 송치하였습니다.

김흥국 큰 음주운전으로도 구설수에 올랐던 적이 두 번 있어 이번 뺑소니 사고가 더욱 논란이 되었는데요.

심지어 첫 번째 음주운전 사건은 뺑소니이기까지 합니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첫 번째 음주운전 사건은 김흥국이 한국 나이로 39세였던 1997년 5월 16일 서울특별시 청담동 학동교차로에서 발생하였는데요.

면허 취소에 해당하는 혈중알코올농도 0.261% 상태 신호대기 중이던 택시 승용차와 이중 추돌 후 그대로 달아났습니다.

축구 모임 회원 두 명과 서초동에 위치한 단란주점에서 양주 한 병을 나눠 마시고 귀가하던 길이었다고 하는데요.

사고를 낸 뒤 1킬로미터 정도 도주하다 뒤쫓아온 택시기사에게 붙잡혀 경찰에 인계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구속 기소되었으며 징역 1년 집행유예 이 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두 번째 음주운전 사건은 김흥국이 한국 나이로 55세였던 2013년 10월 10월 11일 서울특별시 청담동 압구정로에서 발생하였는데요.

100일 면허정지에 해당하는 혈중알코올농도 0.071% 상태에서 자신의 베라크루즈 차량을 운전하다가 음주 단속에 적발되었습니다.

궁금증 해소에 도움이 되셨길 바라며 김흥국 씨가 이번엔 음주는 하지 않았다고 하니 앞으로 반성하면서 더 올바른 운전 생활을 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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