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흘러서 20년 동안 아버지를 보지 않고 살아왔다는 성동일 씨 어느 날 아버지가 별세했다는 소식을 받게 되었지만 아버지가 미워서 장례식장에는 가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배우 성동일 대한민국의 네로라는 연기파 배우들 중 한 명으로 명품 배우라고도 불리고 있죠.
게다가 거침없는 입담으로 티비 예능에서도 활약하는 등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배우이자 연예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는 1964년생으로 인천 출생입니다.
간혹 여러 작품에서 사투리를 워낙에 구수하게 구사하여서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어릴 때 잠시 전남 화순군에서 살았던 걸 제외하면 인천에서 나고 자랐다고 합니다.
작품마다 워낙에 맛깔나는 연기를 보여주는 그인지라 데뷔 때부터 연기력으로 주목을 받았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1984년부터 연극 무대에서 연기 경험을 쌓았고 1991년 SBS 일 기 공채 탤런트로 방송계에 입문한 그 연극 무대의 오랜 경험 때문인지 연극과 티비 드라마에서의 연기 차이를 구분하지 못해 무척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확실히 배우들이 무대에서 펼치는 연극 연기와 카메라 앞에서 펼치는 방송 연기는 차이가 크죠 대사 톤이라던가 목소리도 크게 해야 되고 많은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카메라 앞에서 연극 연기를 펼쳤던 성동일 씨 본인은 이유도 모른 채 감독들에게 찍혀서 한동안 아니 꽤 오랫동안 작품 활동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추후 회상하기를 난 잘한 것 같은데, 다들 왜 그러지라고 당시 굳게 믿고 있었다고 하네요.
물론 추 이를 깨닫고 처음부터 연기 공부를 다시 하여 재기의 기회를 노렸다고 합니다.
아무튼 그렇게 세월은 흘러가고 지쳐가고 있을 성동일 씨에게 기회가 다가오죠 바로 드라마 은실이 여기서 바로 전설의 빨간 양말의 양정팔력으로 열연을 펼쳐 정말 대단한 인기를 모으게 됩니다.
저도 이 은실이 당시 재미있게 봤던 그런 드라마였는데요.
꼬마였던 당시에 저는 특히 이 빨간 양말의 분량을 보기 위해 이 드라마를 기다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마치 드라마 안에서 코미디시티콤을 따로 보는 기분으로 정말 재미가 있었거든요.
사실 이 은실이에서의 성동일 씨의 배역 초반엔 몇 회마다 가끔씩 출연하는 비중이 적은 역할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당시의 성동일 씨 1991년 방송계에 대비하여 1998년 은실이 드라마를 찍기까지 일거리도 거의 없는 무명의 생활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한계 직전의 상황이었던 것이죠.
이 은실이에서 양정팔의 배역을 들었을 때 어차피 가끔 화면에 나오는 웃긴 놈이라고 하던데 티비 배우를 그만두어도 좋으니 이참에 있는 대로 까불어보자 짤리면 짤리는 것이고. 한번 독하게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이번 작품에 임했다고 합니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라고 했던가요 이게 여기에 적절한 말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마음 놓고 연기를 펼친 성동일 씨 결과는 모두 아시다시피 대성공이었습니다.
오히려 드라마에서 빨간 양말 양정팔의 분량만 따로 더 만들어서 다룰 정도였으니 말이죠.
재밌는 건 긴 무명 생활을 거쳐서 빨간 양말로 큰 성공을 거둔 후 오히려 이후 한동안은 빨간 양말의 코믹한 이미지가 너무 강해 다른 진지한 작품에서 연기를 하는데 애를 먹었다고 하는데요.
은실이 이유 이드메인 1999년 KBS의 주말 드라마 유정에서 잘 나가는 사전 사랑님의 아들이면서 여주인공 박진희와 사랑에 빠지는 역할로 주연을 맡은 적이 있었으나 그의 코믹하고 음흉한 기존 이미지가 너무 강해 상대 여배우가 같이 연기를 못 하겠다고 할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결국 제작진의 판단으로 성동일 씨는 드라마에서 뜬금없이 회사에서 해외 지사로 발령받아 떠나는 설정으로 드라마에서 갑작스레 하차하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야인시대라던가 응답하라 시리즈 슬기로운 감빵 생활 등등 많은 작품에서 개성이 강한 역할을 맡아 멋진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죠.
정말 데뷔 이후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고 할 정도로 많은 작품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성동일 씨입니다.
이렇게 빨간 양말로 일생 일대의 기회를 잡아 현재는 주목받는 스타 연기자가 된 성동일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종종 얼굴을 비추고 있죠.
가족과 함께하는 예능 프로그램인 아빠 어디가에 출연하여 사랑하는 자식들과 함께하는 좋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성동일 씨 본인은 굉장히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요.
성동일 씨는 과거 방송에 나와 사생아로 태어나 지금까지 와서 집사람과 결혼식도 못 올리고 애 셋을 낳고 살았다. 부모님에게 난 원치 않은 자식이었다.
또한 여기에 더해 아버지의 폭력이 있었다는 점까지 이런 이야기가 방송에 나간 이유 사생아가 무슨 뜻이냐부터 시작해서 좌절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라온 점이 존경스럽다 많은 사람들이 성동일 씨에게 위로를 보냈는데요.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이 같은 사실이 공개된 적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혼인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진 원치 않은 자식이었다는 성동일 씨 아버지는 가정을 전혀 돌보지 않았기에 8살 터울인 누나와 남의 집에서 단둘이 살았다고 하는데요.
누나가 남의 집 밭일을 도와주고 먹을 것을 받아와서 어린 성동일씨를 키웠다고 합니다.
누나가 부모님의 역할을 대신한 거죠. 그렇게 어린 시절 부모 대신 누나의 손에서 자란 감히 누나에게는 함부로 대들지 못한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누나가 혼내다가 뺨이라도 때리려면 오히려 무릎을 꿇고 맞았다고 할 정도로 누나의 말은 절대적이었다고 하는데요.
대들지 않고 무릎을 꿇고 맞았다는 걸 보면 소홀했던 부모님 대신 자신을 아껴주고 돌봐주고 혼을 내주었던 누나에 대한 존중이 있었기에 그렇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 누나에 대한 일화 중에 또 하나가 그가 빨간 양말로 스타 배우가 되어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섭외가 많았다고 하는데요.
그는 당시 배우가 예능은 무슨이라며 거절을 했다고 합니다.
그걸 본 그의 누나가 너의 집사람이 감자탕집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그건 알고 있냐 너 혼자 배우 대접받으면 그만이냐라고 글을 꾸짖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성동일 씨는 일고의 반박도 없이 이유는 예능 프로그램에도 열심히 출연을 했다고 하네요.
가정을 꾸리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로 누나의 말이라면 절대적이라는 성동일씨입니다.
아무튼 다시 부모님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렇게 누나 밑에서 호적에도 등록이 안 되고 학교도 다니지 못한 채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성동일 씨 그가 10살이 되던 무렵 그의 어머니가 아버지를 만나 다시 재결합을 하게 되면서 비로소야 호적에 성동일씨가 등록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성동일 씨의 아버지는 다른 여자가 있어서 재결합을 원치 않았던 것인지 가정의 불화가 있었고, 그렇게 아버지와 만나게 된 다음날부터 성둥일 씨는 아버지에게 맞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모든 불행은 자식 때문이라 생각했는지 아버지란 사람은 성동일 씨의 원망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이해할 수가 없는 노릇이죠.
아무튼 부모님과 같이 살면서 이제 좀 행복해지나 싶었던 어린 그는 매일같이 아버지로부터 폭행을 당하게 되었고 그 시절 그의 꿈이 집을 나가서 사는 것이었다고 하니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세월은 흘러서 20년 동안 아버지를 보지 않고 살아왔다는 성동일 씨 어느 날 아버지가 별세했다는 소식을 받게 되었지만 아버지가 미워서 장례식장에는 가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너무 매정한 것일까요? 글쎄요 저는 성동일 씨의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명하게도 성동일 씨의 아내분이 아이들과 함께 시아버지를 뵙고 장례식장에도 다녀왔다고 하니 아내분이 정말 지혜로우신 것 같네요. 그런 아내분에 대한 사랑이 각별한 성동일 씨이고 말이죠.
어쨌든 그런 불우한 어린 시절 보냈던 성동일 씨 요즘에 가장 큰 낙은 아이들을 보면서 애들이 피자가 먹고 싶다고 할 때 피자값 걱정 없이 사주게 되었을 때라고 하는데요.
자신이 어린 시절 받지 못했던 사랑을 내 아이들에게는 듬뿍 주고 싶은 게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