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가수로서 남진은 우연과 실패와 성공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울려고 내가 왔나’, ‘지후 그는 가슴 아프게 우수’, ‘마음이 고와야지’ 등 히트곡을 연이어 만들어냈고 발표하는 곡마다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며 탄탄대로를 달리게 되는데요.
그런 남진은 파란만이 수십 년의 음악 인생 중 세 번의 어려움을 겪기도 했는데요. 첫 번째는 병역으로 인한 3년간의 공백 기간이었고 두 번째는 결혼 후에 팬들이 빠져나가는 썰물과 외국에서의 떠돌이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외부 압력으로 인해 낙향하여 치과에서 3년을 보내는 동안이었습니다. 남진은 76년에 윤복희와 결혼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윤복희에게 본 남편이 있는 것을 알게 되어 결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80년대 신군부가 세상에 들어서면서 남진의 아버지가 김대중의 사람이었다는 이유로 탄압을 받기 시작했고 남진은 출연 정지까지 당하며 결국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고 아이 셋을 낳고 넷째가 태어났지만 귀국한 후 몇 년간의 공백 기간으로 인해 남진은 슬럼프에 빠지게 되었는데요.
이미 가요계는 조용필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었고, 그런 시기에 남진은 박준석 작곡가와 4년 만에 다시 만나 ‘빈잔’이라는 노래를 받게 되며 다시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시대가 바뀌어 여러 가수들이 등장하며 예전만큼의 인기를 얻지는 못했고 게다가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오게 되는데요.
한 호텔 카바레에서 노래를 부르고 나와서 주차장에서 자신의 차문을 여는 순간 갑자기 뒤쪽에서 나타난 20대 남성 3명에게 흉기로 허벅지를 찔리게 되어 전치 3주에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후 남진은 건강이 나빠지며 가수 생활을 그만두고 떠날지 고민할 정도로 몸이 많이 안 좋아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연히 남진은 당시 무명이었던 차태일이라는 작곡가를 되었고 이후 대박을 칠 곡 ‘둥지’를 받았는데요.
방송국 피디도 성공할 줄 몰랐던 이 노래는 결국 대박이 나며 남진의 전성시대를 한 번 더 열게 되었습니다. 위기를 다시 극복한 그는 몇 번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는 국민 가수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음악은 시대와 사회적 상황에도 적응하면서도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남진 인기의 비결은 강인한 의지와 열정, 인내심, 좋은 음악과 노력 그리고 우연한 만남과 기회의 조합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모든 요소들이 그를 오랜 시간 동안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가수로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남진은 겸손하게 “이 자리를 하늘이 만들어준 것”이라고 말하면서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노력은 자신의 몫”이라고 덧붙이며 그 이상의 결과는 모두 운명에 달려있다고 언급합니다. 그는 세 번의 슬럼프를 겪었지만 팬들의 뜨거운 사랑 덕분에 항상 다시 일어날 수 있었고, 슬럼프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노력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고 말했는데요.
그는 숱한 히트곡을 만든 작곡가 박준석의 별세 소식을 접한 후 어느덧 팔순이 되었습니다. 그의 노래를 계속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가 오래도록 건강하게 활동하기를 바라며 응원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