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나미는 80년대에서 90년대까지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시대를 풍미하기도 했는데요. ‘인디안 인형처럼’, ‘빙글빙글’, ‘슬픈인연’, ‘영원한친구’ 등을 발표하며 최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나미는 돌연 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간 유부남과 동거를 했으며 그 남성과 이미 애까지 있다는 기사가 쏟아진 것입니다. 그날 이후 나미는 화려했던 톱스타의 자리에서 물러나 가요계에서 모습을 감추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유부남 최봉호를 만나면서 논란의 주인공이 된 것인데요. 당시 어떻게 유부남 최봉호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인지 관심이 쏠리기도 했습니다.
나미는 바로 ‘영원한 친구’를 발표해서 활동하고 이후에 남편이 될 유부남 최봉호를 만나게 됩니다. 참고로 최봉호는 조용필, 김수철, 하춘화 등 당대 톱스타들을 발굴하고 키웠던 연예계의 대부라고 불리던 삼호기획 대표이사였습니다.
최봉호의 나이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나미보다 스무살 이상 연상이었고 당시 자산이 1000억 원에 달했다고 알려져있는데요. 나미는 그런 그를 1980년도 말쯤에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 제안이 들어와서 ‘회장님’이라 불리던 최봉호의 사무실에서 처음 만났다고 합니다.
그는 나미에게 “뭘 원하니”라고 물었다고 하는데요. 또 나미의 형편을 들었는지 “집을 한 채 장만해줄까?”라고 말하자 나미는 “싫습니다. 저는 그저 음반 한 장만 낼 수 있으면 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것이 그에게는 인상적이었던 것 같은데요. 또한, 나미를 보며 ‘연예인 중에도 이렇게 순진한 사람이 있구나’ 싶어서 놀랐다고 합니다.
결국 이렇게 최봉호는 나미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었고 둘은 급속도로 가깝게 되었으며 결국 동거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당시에 최봉호에게는 아내가 있는 상황이었는데요.
심지어 최봉호는 당시 아들 두 명이 있었는데요. 그중에 한 명이 바로 뮤지컬 배우 최낙희였습니다. 나미와 최봉호는 나미가 24살이던 1980년부터 동거를 했고 1984년에 큰아들 최정철을 낳았는데 이 당시에 최봉호는 전처와 별거 중이었습니다.
결국 최정철은 최봉호의 호적이 아니라 나미의 남동생으로 호적에 오르게 됩니다. 나미가 인기 가수였기에 부득이하게 가족이 외출을 할 때는 나미는 늘 몇 발짝 앞서 걸었고 애는 최봉호가 데리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렇게 나미는 24살부터 최봉호와 비밀 결혼 생활을 유지합니다. 나미가 1980년대 최고의 여자 댄스 가수 중에 한 명이었기에 이 사실이 밝혀진다면 연예계의 메가톤급 폭탄이 될 수도 있었는데요.
하지만 최봉호가 연예계의 큰 손이었기에 연예계 기자들의 입을 잘 막았습니다. 당시 팬들은 인기 정상의 댄스 여가수 나미가 유부남과 동거를 하고 아들까지 낳았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는데요.
결국 나미는 ‘인디안 인형처럼’을 발표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 됩니다. 하지만 일명 최봉호 사건 그는 자신의 사업을 위해 조직폭력을 키우고 뒷돈을 대와 우리나라 폭력계에 큰 자금원의 하나로 일찍부터 꼽혀왔습니다.
나미가 ‘인디안 인형처럼’으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할 무렵에 이 최봉호 사건이 터졌고 결국 최봉호 역시 더 이상 연예부 기자들의 손을 막지 못하고 나미와 유부남에 대한 동거 및 이미 애가 있다는 기사가 터져버린 것입니다.
결국 큰 인기를 얻고 있던 나미는 더 이상 활동을 하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은퇴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나미는 몇개의 앨범을 내긴 했지만, 예전의 명성을 되찾지는 못했는데요.
나미는 1996년에 둘째가 가지게 되었지만 최봉호는 너무 많은 나이에 자식을 또 얻자 펄쩍 뛰었는데 나미는 말려도 낳겠다고 고집을 부리며 집을 나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나미의 배는 불러오기 시작했고, 결국 항복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나미는 늦둥이 아들을 낳게 되면서 1996년 활동을 접게 되었습니다.
나미의 이미지가 트로트 가수가 아니라 댄스 가수였기 때문에 더욱더 활동이 어려웠던 것 같은데요. 이후 반포에 한정식 ‘야미’를 오픈하며 사업가로 변신했습니다. 연예기획사 ‘양지기획’의 대표 최봉호 씨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낳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그녀를 응원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