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로 국민들이 큰 시름에 빠져있던 1997년, 행복을 전파하는 강의를 통해 일명 ‘웃음 전도사’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방송인 정덕희.
특히 중년 여성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방송은 물론 각종 행사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 활약을 이어갔는데요.
하지만 2007년 한 언론사의 취재결과 정덕희가 자랑해온 모든 학력과 경력이 가짜였음이 드러나면서 폭망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09년, 또 한 번 충격적인 소식으로 언론의 장식했습니다. 자신을 해룡사 주지스님으로 밝힌 경산스님은 ‘나와 사실혼 관계에 있던 정씨가 사찰 부지에 대한 토지 거래허가를 받을 목적으로 위장 전입을 했다.’며 믿기 힘든 내용의 폭로를 이어간 것입니다.
승적을 박탈당할 수 있는 치명적인 비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산스님은 정덕희와 자신의 관계를 만천하에 공개하며 한동안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죠.
정덕희는 한 지인으로부터 사업 홍보를 부탁받고 강의를 진행하다 당시 출가 전이던 경산스님 유모씨를 만나게 되었다는데요. 그는 당시 한의원을 운영하는 원장으로 평범한 일반인의 삶을 살고 있었고, 여성과의 만남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었기에 정덕희와의 만남도 자연스러웠는데요.
문제는 정덕희가 유부녀라는 사실이었지만, 남편과 리스였을 만큼 관계가 소홀했던 정덕희는 유씨와 깊은 관계를 맺게 됐죠.
이후 유씨는 연인 정덕희에게 수차례 돈을 빌려가더니 한동안 연락을 끊고 잠적했고 갑자기 승복을 입고 나타나더니 ‘돈을 못 갚아 사죄하는 마음으로 스님이 됐다. 내 이름은 경산스님이다.’라며 정덕희를 놀라게 만들었다는데요.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화해, 다시 깊은 관계를 맺은 두 사람. 그러나 정덕희가 사찰부지 매입비와, 운영비 명목으로 유 씨에게 8억 원을 빌려줬지만 이를 돌려받지 못하자 2007년 유씨를 고소한 것인데요.
2008년 결국 유씨는 토지소유권과 건물을 다 돌려주고 화해조서를 쓰면서 사건도 마무리되는 듯했지만, 이듬해인 2009년 ‘돈을 빌린 게 아니라 연인관계인 정덕희가 그냥 준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폭로가 시작된 것입니다.
거기다 이 과정에서 유씨는 정덕희와 찍은 비디오까지 가지고 있다는 협박까지 이어갔습니다. 일부매체에서 진행한 취재 결과 해당 비디오는 실존했고 노골적인 장면들이 담겨 있어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엔 정덕희와의 송사 끝에 결국 경산스님 유씨는 승려증도 반납, 종교인으로서 모든 걸 잃은 채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모두가 힘들었던 시절 행복전도사로 가정의 중요성을 역설하던 여교수가 스님과 불륜을 저지르고 이 과정에서 돈 문제에까지 연루되다니 다시 봐도 정말 충격적이네요.
본업은 배우이지만 대표작보다 7번의 결혼과 국밥 사업으로 더 유명한 유퉁. 결혼을 무려 7번이나 한 이색적인 경력답게 그간 그가 만나온 여성들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유퉁은 19살의 어린 나이에 두 살 연상의 여대생과 첫 결혼식을 올렸지만 무려 3번이나 재결합과 이혼을 반복하다 끝내 헤어지고 말았는데요. 쓰디쓴 첫 결혼에 실패를 극복하게 도와준 건 두 번째 부인이었습니다.
당시 연극 작품을 기획하며 여자 주인공을 물색 중이었던 유퉁. 이 과정에서 한 여자배우가 오디션을 보기 위해 극단에 문을 두드렸지만 평소 성형수술을 한 인위적인 얼굴을 싫어하던 유퉁은 이 배우의 쌍꺼풀 수술흔적에 불같이 화를 냈다는데요.
작품 관계자인 유퉁의 역정이 이 여자배우에겐 꽤나 충격이었던 걸까요? 놀랍게도 이 여성은 유퉁에게 쌍꺼풀 지적을 받은 뒤 바로 경북 청도에 있는 한 절로 머리를 밀고 출가를 하는 믿기 힘든 선택을 저질렀다고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을 전해들은 유퉁은 곧바로 해당 선사에 찾아갔으나, 이미 그 여성은 묵언수행에 들어간 뒤였다는데요. 자신의 말 한마디로 말미암아 그야말로 인생이 뒤바뀐 여성에게 큰 죄책감을 느낀 유통은 그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계속해서 설득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그러다 최종적으로 ‘이 질긴 인연을 결혼으로 풀자.’는 쪽지를 건넸고 사흘 후 자신의 염주를 유퉁의 목에 걸어주며 무언의 긍정 의사를 내비쳤다는 이 여성. 그 길로 두 사람은 산에서 내려와 곧바로 같이 살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두 사람의 만남부터 결혼까지 어느 하나 평범할 게 없는 충격에 연속이지만, 더 놀라운 건 이후 전해진 두 사람의 결혼생활입니다.
이 여성은 유퉁과 함께 생활하는 동안 3년간의 묵언수행을 지키기 위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본명이나 자신의 신상에 관해서도 입을 열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마침내 길고 긴 3년간의 수행이 끝났지만 행복한 결혼 생활은 없었습니다. 평범한 일반인의 삶보다 비구니의 삶에 더 큰 만족을 느꼈던 건지 3년을 채우자마자 두 번째 부인이 ‘당신은 당신 갈 길로 가라. 나는 내 갈 길로 가겠다.’라는 한 마디를 남긴 채 홀연히 떠났습니다.
유퉁의 갈 길은 수많은 결혼이었던 걸까요? 익히 알려진 대로 유퉁은 이후 20살 연하의 여성과 다섯 번째로 결혼하는데요.
<도전지구 탐험대> 촬영 중 만난 15살 몽골 여성과 6번째 결혼을 이후 33살 연하 또 다른 몽골 여성과 7번째 결혼을 하는 등 한국 연예계 역사에 길이 남을 결혼 행보를 보였습니다.
22년간 방영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장수 국민 드라마 <전원일기> 속 복길엄마 캐릭터로 잘 알려져 있는 배우 김혜정.
그녀는 20년을 넘게 홀로 산속 외딴집에 거주하고 있는 독특한 이력으로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낸 바 있는데요. 방송에서는 건강을 위해 산속 전원생활을 선택했다고 밝혔지만, 그녀의 순탄치 않은 결혼생활을 아는 사람이라면 산속 생활의 이유로 단박에 전남편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김혜정의 전남편은 황청원이라는 사람으로, 김혜정과 결혼으로 맺어지기 전 스님이었다는데요. 자신이 머물던 경국사에 찾아온 김혜정에게 첫눈에 반하면서 금지된 사랑을 시작했고 결국 김혜정과 결혼하기 위해 승복을 벗는 쉽지 않은 결정까지 하게 된 것이었죠.
결혼생활은 초반만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수년이 지나도 둘 사이에 자녀는 생기지 않았고, 한 차례 종교인으로서의 삶을 경험한 황씨와 평생을 일반인으로 살아온 김혜정 사이에 크고 작은 충돌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쉽지 않은 부부생활을 이어가던 두 사람은 결국 성격차이로 결혼 5년 만인 2003년부터 별거를 시작합니다.
시기상 김혜정은 이 무렵부터 자연에서 혼자 사는 것을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7년 간의 별거 끝에 마침내 2010년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고 남남의 길을 걷게 됐다고 합니다.
남편과의 결혼 생활에 관해 구체적으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김혜정은 이혼 후 대인기피증에 걸려 5년 이상 타인과의 교류를 철저히 중단한 채 살았을 만큼 힘든 나날을 보낸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래도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수년간 봉사활동을 지속하며 최근에는 몇몇 되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때묻지 않은 순수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반가움을 자아내기도 했는데요.
오늘 살펴본 세 커플 모두 안 좋은 결말을 맞은 걸 보면 종교인과 일반인의 만남엔 사랑만으로 이겨내기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가 많은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