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가 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이 있다면 일생 자체가 전성기라고 불릴 만큼 평생의 인기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데뷔할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탑스타의 자리를 유지한 이효리는 가히 신드롬 자체라고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던 인생인데요.
그런 그녀가 김연아와 처음 만났을 당시 큰 굴욕감을 느끼며 오열을 했던 건 물론 고소까지 결심할 정도로 분노한 사연이 알려져 화제입니다. 한편, 이효리는 남태령 부근에서 살던 이효리는 학창시절 때부터 지역의 신드롬이었습니다.
인근 남학교 학생들은 이효리를 남태령 소녀라고 별명을 붙인 후 그녀를 두고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것도 모자라 절교를 할 정도로 10대 시절부터 뛰어난 미모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아왔습니다. 발렌타인데이만 되면 책상이 선물로 미어터졌을 정도라 하니 사주팔자 자체가 조용히 살기엔 틀린 최고 톱스타의 팔자인 듯 싶은데요.
이런 그녀도 90년대 10대 소녀면 누구나 그러하듯 H.O.T열성팬이 되었는데 H.O.T팬들 사이에서조차 이효리의 미모는 입소문이 났을 정도였으며 이에 SES를 데뷔시킨 SM 담당자에게 강제로 사무실로 끌려갔던 적도 있었습니다.
이렇듯 데뷔 전부터 소문이 난 그녀는 여러 기획사들의 엄청난 구애에 시달렸고 결국 DP 기획사와 손을 잡으며 1998년에 그룹 핑클로 데뷔하게 됩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스무 살로 핑클의 리더자리를 소화해냈습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던 SES와 H.O.T 및 잭스키스마저 누르고는 방송 3사의 본상을 휩쓸며 신인상까지 수상하는 영광을 차지합니다. 그 시절 핑클의 어마무시한 인기는 아직까지도 견줄 여자 그룹이 없을 정도입니다. 특히 이효리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긴생머리와 매력적인 눈웃음으로 단숨에 많은 팬들을 사로잡았는데요.
그러나 2000년대가 오면서 90년대 아이돌들은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룹은 하나둘씩 해체하기 시작했고, 본격적인 솔로 가수 전성시대가 열렸었습니다. 장나라와 비 그리고 보아 같은 수많은 솔로 가수들이 시장에 쏟아지며 기존 1세대 그룹 아이돌인 이효리는 데뷔 3년 만에 선택의 기로를 맞게 됩니다.
그리고 과감하게 2003년 25살의 나이로 첫 솔로 앨범을 발매하게 되었는데 그 솔로 앨범 타이틀곡은 바로 ‘텐미닛’이란 전설적인 곡이었습니다. 이 곡은 엄청난 대히트를 기록하며 각종 방송사의 대상을 휩쓸었고 나아가 그녀가 MC를 맡은 예능들마저 연속적인 시청률 대박을 치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손만 댔다 하면 터지는 이효리 신드롬의 시대였던 것인데요. 이후 솔로 가수 전성시대가 지나고 가창력 가수들의 전성시대가 왔지만 이효리는 삼성 휴대폰의 광고 모델로서 애니모션 같은 광고 음악마저 히트를 쳤기에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너도나도 ‘타도 이효리’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새롭게 데뷔하는 가수들의 기사엔 ‘이효리에 도전한다.’ ‘이효리야 비켜라‘와 같은 타도 이효리에 대한 수식어가 기사들의 필수적인 헤드라인으로 실렸었습니다. 하지만 이효리는 2008년에 유고걸로 제 3의 전성기까지 성공시켜 버리며 30대에 들어서도 20대 후배들을 꺾은 채 가요계 퀸 자리를 굳건하게 지켰습니다.
그런데 2008년에 이효리가 김연아 사건으로 엄청난 수치심을 느끼며 남몰래 오열한 것도 모자라 결국 소송까지 진행했던 한 일화가 존재합니다. 2008년 동아일보는 이효리가 김연아에 밀린 이유라는 기사를 내보냈는데요.
기사의 내용인, 즉슨 프로야구 시즌 LG트윈스의 홈개막전이 열렸던 잠실 구장에서 이효리가 김연아에게 밀리며 결국 시구 자리를 양보해줬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초 이효리는 LG에게 시구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으나, 이효리가 삼성이 광고 모델이자 김연아의 위상이 더 높다고 판단되어 결국 시구 제안을 거절하는 바람에 이효리가 굴욕적으로 관중석에서 경기관람을 했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날의 진실은 동아일보의 기사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효리는 경기가 시작되기 전 한 기자가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자 내가 야구를 보러 왔다는 기사를 내겠다며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고 김연아가 시구를 맡은 걸 확인하자 김연아를 처음 보는데 너무 귀엽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경기장을 다녀온 다음날부터 엄청난 가짜 뉴스들이 쏟아졌습니다. 기자들은 이효리가 먼저 LG에게 시구 제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절당했다며 역시 스포츠 스타에겐 스타 가수조차 안 된다는 그런 조롱의 기사 내용들을 보도한 것입니다.
기사를 확인한 이효리는 결국 침대에서 대성통곡하며 오열했고 짜증을 넘어 계속 꿈에서 나올 정도로 분하고 억울하다는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자신은 야구가 보고 싶어 간 거였고 이날 누가 시구를 하는지조차 몰랐는데 기자들이 왜 이리 나쁜지 모르겠다며 자신의 인생이 이용당하는 느낌이라고 말했었는데요.
실제로 당시 네티즌들은 이효리의 굴욕 사건이라고 부르며 한동안 인터넷 검색어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는 뜨거운 뉴스거리였습니다. 이에 이효리 소속사는 허위 보도를 한 언론사를 고소하였는데 재판 과정 중 드러난 사실을 알고 보니 실로 대단한 반전이 존재했습니다.
오히려 LG가 먼저 경기 일주일 전에 이효리에게 시구 제안을 요청했으나, 이효리 측이 LG의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렇듯 평생 톱스타의 인생은 마냥 좋다고만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화려한 삶의 이면엔 가짜 뉴스의 대상이 되는 그런 억울한 속마음 역시 감수해야 되기 때문인데요. 이것이 그녀가 모든 걸 내려놓고 제주도로 떠났던 이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천생 연예인 이효리 최근에 다시 활동을 늘려가고 있는데요. 그녀의 앞으로의 행보를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