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들에게 연예인은 늘 화려한 모습으로 기억되곤 합니다. 하지만 오늘의 스타가 내일에는 무명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는데요.
화려한 무대생활을 뒤로 한 채 흔한 아르바이트로 당장의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연예인들도 있습니다.
그중에서 미소년 비주얼로 90년대에 풍미했지만 이제는 모두 잠든 새벽, 택배 기사로 생활하고 있어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인물이 있는데 바로 그룹 태사자 멤버 김형준입니다.
그의 모습은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을 실감케 하는데 그가 출연한 방송을 본 시청자라면 그가 택배 기사로 살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김형준은 한 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본업은 택배 기사’라며 ‘보여주기식으로 택배 일을 시작한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는데요.
연예인에서 택배 기사로 변신한 흔치 않은 경우여서 택배 모델로 발탁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택배 업무 도중 기사들이 겪는 고충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일부 고객이 ‘음식물 쓰레기를 대신 버려달라’고 했다는 씁쓸한 경험담은 택배 기사로 살아가는 고충을 충분히 엿보게 했습니다.
화려한 과거를 뒤로 하고 현실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 그가 어머니와 함께 오은영 박사를 찾아왔는데 그에게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김형준의 어머니는 ’46세 우리 아들, 이제 철 좀 들었으면 좋겠어요’라는 사연으로 제보를 했습니다. 어머니는 ‘마흔이 넘도록 아버지에게 금전적 지원을 받았다는 아들 장래가 걱정된다’며 고민을 털어놓았는데요.
어머니는 ‘어릴 때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아버지가 공과금을 도와주고 있어요. 답답할 때도 많아요. 형준이 집에 가지 않아요. 이대로 가다간 장래가 걱정돼요.’라고 속마음을 털어놨습니다.
어머니의 폭로에 김형준은 ‘아직까지 부모님께 용돈 드려본 적이 없어요.’라며 인정했고 ‘매달 80만원 용돈을 받는 것도 모자라 밀린 카드값만 5천만원인 적도 있었어요’라고 털어놓아 모두를 충격받게 했습니다.
그는 한국외대에 수석 입학해 받은 장학금 전액까지 노는 데 탕진 했었다고 전했으며 “인기가 많았던 2000년도 초반의 명품도 많았어요. 당시에 연기를 하려고 했는데 계약금으로 1억을 준다는 회사도 있었어요.”
“그걸 믿고 카드를 썼어요. 그 계약금이 아직도 안 돌아왔어요. 그 당시 한 달 카드값만 800만 원씩 쓰기도 했어요. 정말 철이 없었죠.”라며 빚을 만들기 시작한 계기를 공개했습니다.
오은영 박사는 “지금 모든 경제적인 관리를 아버지가 해주고 계신 셈이에요. 46세 형준씨한테 뼈 때리는 말을 할 거예요.”
“이처럼 40대 넘어서도 부모님에게 경제적 도움을 계속 받으면서 곁을 떠나지 못하고 기대는 이런 사람을 ‘기생충, 기생 자식’이라 얘기해요.”
“최근에는 부모의 연금 노후 자금까지 내 돈처럼 말아먹고 산다고 해서 빨대족이라고도 불러요. 표현이 좀 그렇죠.”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박나래, 이윤지 등 출연진들은 “90년대에 잘 나갔잖아요? 태사자로 돈 많이 벌었지 않아요?”라며 의아했는데요.
김형준은 불공정했던 계약을 언급했습니다. “그때 계약을 잘못한 것 같아요. 2집이 잘 됐는데 그때 계약서에 ‘앨범 10만장 이상 팔리면 소정의 금액을 지급한다’ 이 한줄만 있었어요.”라고 전해 충격을 안겼습니다.
이어 그는 “1,2집 활동때 정산은 100원도 못 받았어요. 2집이 끝나고 불공정 계약에 더는 못할 것 같다 한 뒤 부모님 집에 멤버들 모두가 피신했었어요.”
“매니저가 찾아왔고 그 후부터 정산받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이미 고점을 찍고 내려가고 있었으니까 아쉽긴 했죠.”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에 오은영 박사는 ‘경제적 자립 시기를 놓치면 너무나 힘들다’며 ‘돈에 대한 개념은 어릴 때부터 배워야 해요’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오은영 박사는 김형준 어머니에게도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들이 아직까지 경제적 독립을 못했는데 왜 그렇게 마흔 넘은 아들에게 도움을 주셨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으세요?”라고 물었는데요.
김형준 어머니는 “제가 태어난 일본과 다르더라고요. 시집 와서 한국에 온 뒤 이상적인 교육관을 펼칠 수 없었어요.”라고 답했습니다.
사실 김형준의 어머니는 일본인이었던 것인데 어머니는 “태사자가 해체한 다음부터는 부모로서 아들을 도울 수밖에 없었어요. 저보다 남편이 잘 도왔어요.”라고 밝혔습니다.
“완전히 혼냈어야 했던 거 아니냐?”라는 정형돈의 말에는 “결혼 후 시부모님과 생활했어요. 집에서 저는 3번째 였어요. 시아버지, 시어머니 그다음이 저였어요. 제 자리가 없었어요.”라고 해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이날 정형돈은 태사자 김형준에게 “19년만에 방송 출연을 했어요. 그 당시에 택배 기사 근황을 밝혔는데 업계에서는 컨셉 이였다는 말이 있었어요.”라며 논란의 진실을 물었습니다.
이에 그는 “사실 저는 방송 계획이 없었어요. 그 방송 한 번만 나오고 생각이 없었는데 녹화를 할 때도 제작진이 걱정했어요.”
“저는 제가 숨길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고 열심히 잘 살고 있는 걸 보여드린 건데 나중에 ‘컨셉이다’ ‘연출이다’ 이런 말이 많았어요.”라고 털어놨습니다.
이어 “진짜로 실제 약 3년간 했었고 지금까지 5만개 이상 배송을 했어요. 지금도 방송 스케줄이 없으면 가끔씩 하고 있어요.”라고 전했습니다.
아들이 배송 업무를 시작했을 때 어땠냐는 질문에 그의 어머니는 “저희 부부는 너무 기뻐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김형준은 “사실 일을 시작할 때 혹시 엄마도 속으로는 ‘안 좋아하는거 아닐까?’라 생각했어요”라며 안심했는데요.
이를 지켜보던 오은영 박사는 “어머니와 연락을 자주 하세요?”라고 질문했고 두 사람은 ‘3개월에 한번 정도 한다’고 답했습니다.
그는 “태사자 해체 후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습을 들키기 싫어 주변 사람들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라고 고백했고 오은영 박사는 그가 전화보다는 문자가 편하고 대면 자체를 불편해하는 ‘토크포비아’라 분석했습니다.
이어 오은영 박사는 김형준에게 그런 성향이 심해진 계기에 대해 질문했는데 이에 그는 어머니가 일본인이었던 것 때문에 과거에 받았던 편견과 가해를 고백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일본인에 대해 더 안 좋게 생각했어요. 친구들이 약올리기도 했어요. 전화를 해서 엄마가 받으면 ‘너희 엄마 발음이 왜그래?’ 그런 경우도 있었어요.”라고 전했습니다.
또한 그는 “어느 순간부터 엄마가 일본 사람이 아니라 사실은 재일교포라고 이야기를 하고 다녔어요. 태사자 활동할 때도 그 말을 했었어요.”라고 고백했습니다.
한일전 스포츠가 있으면 “제발 한국이 이겨라라고 속으로 기도했어요. 일본이 이기면 나는 학교에 가서 맞아요.”라며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한일전에서 한국이 패배한 이후 겪었던 일을 회상했습니다.
김형준의 이야기를 듣던 어머니 역시 충격을 감추지 못했고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철저히 감췄어요. 그런데 약간의 느낌은 왔어요. 진짜 미안해요.”라고 전했습니다.
엄마 가슴 아프게 안 하려고 이야기를 안 했다고 말하는 그에 대해 오은영 박사는 “편안하게 조금씩 일본어를 배우면 좋을 것 같아요. 한국어처럼 유창하게 안 하더라도 도움이 될 때가 있어요.”
“일본어를 시작으로 일본이라는 어머니의 나라에 대해 조금 알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게 형준씨의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어요.”라고 리마인드 여행을 권유했습니다.
결국 김형준의 행동은 어린 시절부터 경험해 온 아픈 기억 때문이었는 듯 비춰지는데 이번 방송 출연을 기회로 삼아 부모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응원하며 그의 가정에 행복만 가득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