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게 버림 받고 방송도 다 끊긴 상황이다…” 김성환 최근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는 안타까운 근황과 전국 노래자랑을 못하게 된 진짜 이유

주위를 둘러보면 웃음을 주고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드는데 천부적인 소질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의 주인공인 김성환 씨도 등장만하면 자연스레 웃음이 지어질 정도로 주위를 즐겁게 만드는 능력이 있는 분인데요.

구수한 입담과 친근한 연기로 활약해온 탤런트 김성환 씨. 1950년생인 그의 나이도 어느덧 70대입니다.

전북 군산 출신인 김성환씨는 지금의 외모에선 잘 상상이 안 되지만,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키와 몸집이 작아서 항상 앞줄에 앉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특유의 재치만큼은 크게 눈에 띄었는데요. 소풍을 갔을 때나 오락시간은 그의 독무대였다고 합니다.

특히 김성환 씨 손 박자 맞추는 능력은 중학교 시절부터 돋보였다는데요. 그 모습을 보며 친구들은 떠나갈 듯 웃었다고 하죠.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비밀이 숨겨져 있었는데, 손 박자 맞추는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그는 손바닥 껍질이 벗겨질 정도로 열심히 연습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남들의 즐겁게 하기 위한 그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인데요. 하지만 유쾌하게만 보였던 김성환 씨에게도 16살 때 큰 아픔이 찾아옵니다.

바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죠. 결국 아버지는 재혼을 하셨고, 장남인 그는 아버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자랐죠.

그런데 놀랍게도 김성환 씨는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는 행동을 하고 마는데요. 김성환 씨는 첫 대학 입시에 낙방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대학을 포기할까 했는데 그의 아버지가 8남매를 모두 대학에 보낼 수 없지만 장남은 꼭 대학에 가야 한다라고 강조했고 김성환 씨는 1969년 말 서울로 올라와 재수학원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동양방송 tbc에서 탤런트 공채를 모집했습니다. 김성환 씨는 친구를 따라 무작정 지원서를 냈죠. 어릴 때부터 남들을 즐겁게 하는데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던 그는 결국 2000명이 넘는 지원자 중에 당당히 선발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대학에 가라고 장남을 서울로 보내 놓은 아버지에게 연기자가 되겠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죠. 그래서 아버지께 3년 동안이나 거짓말을 하면서 연기자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러나 결국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시골로 내려와 농사나 지으라고 호통을 치셨죠. 그래도 김성환 씨는 연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출연료도 적고 머슴, 도둑, 범인 같은 단역이었지만 그는 묵묵히 최선을 다했죠.

그러나 무명을 벗어나는 일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그냥 다 포기하고 싶던 순간 한줄기 빛이 비쳤는데요.

김성환씨의 무명생활은 10년이나 넘게 지속됐습니다. 그러던 중 친구의 사촌 여동생을 만났고 사랑을 키우게 됐습니다.

그런데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인사를 갔다가 심한 반대에 부딪히게 되는데요. 그래도 물러날 수 없던 김성환 씨는 장인어른을 따로 찾아가서 어머님이 8남매라 안 된다고 하시는데 도와주세요라고 부탁을 했죠.

그때 장인어른이 대뜸 이순재만큼 될 수 있냐라고 물어봤는데 김성환 씨는 ‘제가 키가 작나요? 인물이 못생겼나요? 할 수있습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 김성환 씨 처가가 이순재 씨와 친척이었다는데요. 결국 그렇게 장인어른의 허락을 받아 그는 1978년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결혼 후 김성환 씨는 승승장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미우나 고우나> <서울 뚝배기> <바람 불어 좋은 날>등 유명 드라마를 통해 국민 배우로 등극했고, 연기뿐 아니라 tbs 교통방송 <9595쇼> <서울 블루스> 등을 통해 약 32년간 라디오 dj로 활약해 왔습니다.

게다가 노래 ‘묻지 마세요’를 발표해 가수로도 큰 사랑을 받아, 매년 연말 디너쇼를 성황리에 펼치고 있는데요.

보통 이렇게 성공을 하면 자식의 미래를 위해 인맥도 동원하고 힘 좀 쓰는게 일반적이죠. 그런데 김성환 씨는 예상외의 선택을 하게 됩니다.

김성환 씨에겐 김도균, 김도성 두명의 아들이 있습니다. 특히 둘째 아들 김도성 씨는 2000년부터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국제경영학을 공부하다가 중퇴하고 연기자가 되기 위해 다시 서울예술대학을 들어갔는데요.

그런 노력 끝에 2008년 KBS 탤런트 시험에 도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처럼 이때 공채 시험에 심사위원장이 바로 김성환씨였던 것입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김도성 씨가 시험장에서 연기를 선보였는데, 김성환 씨는 가차없이 혹평을 하며 1차에서 아들을 떨어뜨렸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그의 아내는 화를 내며 왜 기회조차 안 주느냐 왜 당신 마음대로 하느냐고 따졌다고 합니다.

그러던 그는 준비 없이 연기 세계에 뛰어들었을 때의 가혹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떨어뜨렸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은 빽과 특혜가 존재하는 우리 사회에 이런 어른은 정말 존경스럽다며 극찬을 쏟아냈는데요. 아마도 이런 모습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김성환 씨를 응원하고 좋아하는 거겠죠.

그럼 이제 전국노래자랑 관련 이야기를 해볼까요? <전국노래자랑> mc로는 김성환 씨 같은 연륜과 경력 그리고 입담과 노래 실력까지 겸비한 분이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는데요.

그런데 왜 그는 <전국노래자랑> mc가 될 수 없었을까요? <전국노래자랑>의 mc를 김신영 씨로 결정한 사람은 바로 현재 책임 프로듀서인 김상미 총괄pd였습니다.

그녀는 40대 초반으로 <개그콘서트> <뮤직뱅크>를 거친 젊은 패기의 연출자인데요. 그녀는 송해 선생님이 세상을 떠난 뒤 두팔을 걷어붙이고 김신영 씨 섭외에 공을 들였고 결국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KBS 임원진들은 김성환 씨가 떠올라 살짝 우려를 표했죠. 그러나 최종적으로 KBS 사장이 새롭고 좋다고 하여 김신영으로 최종 결정이 됐습니다.

즉 결론적으로 보다 젊어진 <전국노래자랑>을 만들기 위해서 현재 73세로 꽤 나이가 있는 김성환 씨가 아닌, 40세 김신영 씨를 택했던 것이죠.

실제로 김신영 씨가 진행을 맡은 뒤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젊은 게스트들이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하는가 하면 <전국노래자랑> 시청층들이 보다 다양해졌습니다.

그러나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전국노래자랑>이 가지고 있던 고유의 특색을 잃어버린 것 같다는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고 계신 분들도 여전히 많은데요.

비록 전국노래자랑 mc가 되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멋지고 유쾌하게 살아온 김성환 씨 인생의 참맛은 앞으로도 다양한 방송과 무대를 통해 국민들에게 계속 전달될 거라 믿습니다. 김성환 씨가 앞으로도 건강하게 활동해 주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