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이제 은퇴하는거냐…” 장민호 숨겨둔 3아이가 밝혀지자 최근 보인 충격적인 입장

여러분은 장민호라는 이름을 언제부터 알고 계셨나요? 장민호의 데뷔 역사를 알게 되면 정말 깜짝 놀라실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장민호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25년 전, 1997년 아이돌 그룹 ‘유비스’를 통해 데뷔했습니다. 지금 이 영상을 보고 계신 미스터 트롯 팬들 중에는 장민호의 데뷔 이후 태어난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장민호가 어려운 무명 시절을 딛고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절대 밝히고 싶지 않았던 과거, 그리고 숨겨진 무명 시절 이야기를 알아보겠습니다.

1997년, 장민호는 4인조 댄스 그룹 ‘유비스’의 메인 보컬로 데뷔하였습니다. 당시 너무 어린 나이였던 장민호는 음악이 무엇인지, 가수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다고 합니다. 그는 뛰어난 외모 덕분에 중학생 때부터 연기 학원을 다니며 단역과 CF 촬영을 하며 연예계에 발을 들였습니다. 유비스로 활동하던 당시, 그는 기계처럼 스케줄을 소화하며 팬들에게 둘러싸였지만, 피곤함이 앞서 감사한지도 몰랐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소속사 대표의 구타에 시달리면서 유비스 시절은 그에게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결국 2년간의 활동 후 소속사가 망하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돌 그룹 생활도 끝이 났습니다.

장민호는 당시 30대 초반까지도 소속사 대표와 비슷한 눈빛을 가진 사람을 보면 식은땀을 흘릴 정도로 트라우마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10년 후 새로운 소속사와 함께하면서 조금씩 나아졌다고 하죠. 폭력은 어른에게도 큰 상처와 트라우마를 남긴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스물한 살에 데뷔한 장민호는 아이돌 가수로서는 다소 늦은 나이였기 때문에, 주변에서는 벌써 트로트 가수로 전향하라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당시 그는 젊은 나이였기 때문에 트로트 가수로의 전향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고, 가창력과 마인드도 트로트의 주 팬층인 중장년층과는 거리감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장민호 하면 ‘트로트계의 BTS’로 불리며 전국 행사 섭외 1순위 트로트 가수가 되었지만, 당시 그는 연예계에서 첫발을 내딛으며 큰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뼈아픈 실패를 겪은 장민호는 이후 7년 만인 2004년, 발라드 그룹 ‘바람’으로 다시 한번 연예계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또다시 실패였습니다. 이에 굴하지 않고 2011년 ‘사랑의 누나’라는 곡을 앞세운 트로트 가수로 변신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또다시 실패였습니다. 결국 그는 월세 20만 원짜리 방에서 힘든 무명 가수 시절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2012년, 장민호는 ‘내 생애 마지막 오디션’이라는 KBS 2TV 프로그램을 통해 1년 만에 재기에 도전하게 됩니다. 이번에는 출연 후 큰 주목을 받으며 드디어 성공의 가도를 달리게 될 것 같았으나, 프로그램은 최악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폐지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가난과 실패의 길만 걷던 장민호는 2014년 발표한 신곡 ‘남자는 말합니다’를 통해 드디어 성공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성인가요로 발표한 이 곡은 성인가요 차트에서 고공행진을 하며 장민호의 인지도를 대폭 높여 주었습니다.

혹시 ‘남자는 말합니다’를 모르시는 분들이라도 고속도로에서 이따금 울려 퍼지는 이 곡을 들으며 장민호를 기억하실지도 모릅니다. 1977년 9월 11일생으로, 올해 46세인 장민호는 나이에 비해 동안일 뿐만 아니라 굉장히 젊은 감각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 후 행사 가수로서 많은 인기를 끌며 TV 출연도 잦아졌지만, 확실하게 이름을 알리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했습니다.

장민호는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터트롯’에 출연하며 큰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처음에는 이미 현역으로 팬덤도 있고 인지도도 있는 상태였기에 출연을 망설였지만, 결국 출연을 결심하게 됩니다. 예선에서 조차 떨어지면 오히려 이미지에 큰 타격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매 무대마다 다른 신인 가수들보다 훨씬 큰 부담과 책임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장윤정 씨도 “잘 해봤자 본전”이라는 말을 하며, 장민호가 현역 가수로서 느끼는 부담을 이해했습니다.

데뷔 24년 차 가수이지만 큰 성공을 경험해보지 못한 장민호는, 30살 차이 나는 후배 정동원과의 듀엣 ‘파트너’를 통해 노련한 선배의 면모를 보여주며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 후 ‘상사화’를 아름답게 소화해 호평을 받으며, 외모와 실력을 겸비한 비주얼 가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장민호는 ‘미스터트롯’에서 최종 7위로 마무리했지만, 트롯 F4로 불리며 우승자 못지않은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그는 다양한 광고 모델로 활약하며 본격적인 인기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장민호는 가수 활동을 하면서 평생 결혼은 하지 않았고, 2014년이 되어서야 어느 정도 수입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전국을 돌며 끊임없이 행사를 다녔기에 제대로 된 연애를 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현재는 수많은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어 결혼까지 생각할 여유는 없을 것 같다고 하네요.

결혼은 인기가 한창일 때 오히려 힘들어지기도 하는데, 장민호는 지금 가수 활동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그는 가수 활동에 실패한 후 수영 강사로 일하며, 연예계와는 또 다른 경험을 쌓았습니다. 잘생긴 아이돌 출신 수영 강사로 어머니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며, 그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장민호는 팬들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어머니 팬들과의 유대감을 잘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는 무명 시절과 많은 실패를 겪으며 지금의 인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멘탈을 키워왔습니다. 최근 배우 신애라가 장민호를 “깔끔하고 웃기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평하며, 두 사람은 국제 어린이 양육기구 ‘컴패션’을 통해 전 세계 어린이 후원과 봉사 활동에 참여하며 친분을 쌓았다고 합니다.

장민호는 무명 가수 시절부터 한국 컴패션을 통해 3명의 아이들과 결연을 맺어 10년 동안 후원을 이어오고 있으며, 컴패션 밴드 활동을 하며 재능 기부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종교적으로도 깊은 신앙을 가지고 있으며, 힘든 시기에도 후원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장민호는 트로트 가수로서 오랜 무명 생활을 청산하고, 대한민국 트로트계의 스타가 되었습니다. 그의 외모와 노래 솜씨만이 아니라,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 사람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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