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불쌍하고 안타까워요….” 전부인 진미령이 공개한 75세 전유성의 충격적인 근황

대한민국 최초로 희극인들을 부를 때 ‘개그맨’이라는 호칭을 쓴 개그계의 전설 전유성에게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져 모두가 놀란 상황인데, 그의 전 부인인 진미령마저 현실을 부정하며 위태로운 상황으로 전해졌습니다. 전유성은 1세대 개그맨이지만 그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면 개그맨은 그가 가진 여러 직업 중 하나일 뿐이었는데요. 전유성은 수많은 사람들의 멘토인 동시에 성공한 공연 기획자이기도 합니다. 심야 볼링장과 심야 극장 아이디어를 국내에서 처음 내고 현실화시킨 것도 전유성이었고, PC 통신 시대가 막 열렸을 때 ‘인터넷 1주일만 하면 전유성 만큼 한다’ 등의 책을 쓴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얼리 어답터였죠. 배우 한채영을 캐스팅한 것도 전유성인데, 미국에서 생활하던 한채영은 고등학교 졸업 후 친구들과 한국에 놀러 갔었는데 우연히 인사동에 있는 카페를 들어갔고 그 카페가 전유성이 사장인 카페였던 것입니다.

한채영은 전유성이 신기해서 전유성에게 사인을 받겠다고 했는데 그게 인연이 되어서 첫 매니저를 소개시켜 주었다고 합니다. 사실 한채영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우연히 광고 계약을 하게 돼서 광고 촬영을 했고 이후 계속해서 미팅이 들어와서 몇 번 일을 하고 나니 연예계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는데요. 배우 한채영의 가치를 먼저 알아본 게 바로 전유성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닌데요. 전유성은 개그우먼 이영자를 발굴하기도 했습니다. 우연히 누가 “야간 업소에 잘하는 애가 있다”고 해서 가봤더니, 그 험한 데서 이영자가 관객을 압도하며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는데요. 그래서 전유성이 이영자한테 “방송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하고 싶다고 해서 “야간 업소 얼마 받냐”고 물어보니 1달에 100만 원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유성은 “자신에게 한 3개월 훈련받으면 방송할 수 있지 않겠냐”고 했더니, 이영자가 “생각 좀 해 보겠다”고 해서 생각을 하는 줄 알았더니, 그 사이에 선물 받은 것을 업소에 다 돌려주고 정리했다고 하는데요. 이후 전유성은 이영자를 MBC에 소개해서 같이 출연하게 됐는데 2주 만에 빵 뜬 것이었죠. “살아! 살아! 내 살아!” 등의 유행어로 히트를 쳤고 갑자기 이영자의 출연료가 천만 원이 되며 몇십 배나 올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느 날 이영자는 전유성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3천만 원을 들고 찾아왔다고 하는데요. 자신은 3천만 원을 써서라도 방송에 출연하고 싶었는데, 그걸 해줬으니 전유성에게 감사함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었죠. 결국 전유성은 이 돈을 받지 않고 “나중에 연예인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렇게 도와주라”고 했다는데요. 그래서 이영자가 방송인이 되고 싶었던 홍진경을 아무런 대가 없이 도와주었던 것 같습니다.

또 김신영의 가능성을 처음 알아차린 것도 전유성이었는데요. 김신영은 전유성이 교수로 있던 예원 예술대학교에서 코미디를 공부했는데 이후 그는 전유성을 깍듯이 모셔왔다고 합니다. 전유성은 그런 제자에게 힘이 되는 말을 누누이 했는데, 김신영이 다이어트와 공황 장애 등으로 힘들어하던 시기 “교수님, 저 한물갔어요”라고 얘기했더니, 전유성이 대뜸 “축하한다”고 한 일화는 정말 유명한데요. “한물갔는데 왜 축하하냐?” 김신영이 물으니 “1물 까고 2물 까고 샘을 가면 보물이 되거든”이라고 얘기하면서 “너는 보물이 될 거야. 두고 봐”라며 용기를 줬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이후 김신영은 승승장구했고 최근 전 국민의 관심사였던 ‘전국 노래자랑’ MC 자리를 송해에 이어 꿰차면서 명실상부 제2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전유성의 이러한 인생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탱탱볼 같은 삶을 살아왔는데요.

반려동물과 함께 즐기는 ‘개나 소나 콘서트’를 만들었고 지방 관객들에게 개그를 배달한다는 콘셉트로 경북 청도군에 ‘코미디 철가방 극장’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전유성이 걸어온 길은 보통 개그맨들과 다릅니다. 그는 지금까지 27편의 영화에 출연했는데 코미디언이 영화에 출연하는 것은 흔한 일이니 이건 접어둘 수도 있지만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전유성의 코미디언 인생 42년은 ‘다르게 생각하기’와 ‘고정관념 깨기’로 축약될 수 있는데요. 그는 몇 발짝 앞서서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했죠. 1995년 종로구 인사동에 ‘학교종이 땡땡땡’을 열었는데, 교실 분위기의 카페로 추억을 파는 카페는 문전성시를 이루며 완전 대박이 났습니다. 이런 사실이 소문이 나자 금방 전국의 유사 ‘학교종이 땡땡땡’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는데 전유성이 연 카페는 대부분 성공했습니다. 2007년 정착한 청도에 카페 ‘니가 쏘다제’를 열었는데, ‘내가 쏟았지’ 왜? 경상도 사투리를 활용한 재치 있는 카페 이름이죠.

전유성은 책을 쓰는 작가이기도 한데요. 1995년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 만큼 한다’를 한 달 만에 써서 저자로 이름을 날렸고 곧이어 ‘PC 통신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 만큼 한다’가 나오며 연이은 히트를 쳤습니다. 같은 해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를 써서 독자들에게 비겁하게 살 것을 주문했는데 독특한 제목의 이 책 역시 한동안 베스트셀러에 올랐죠. 저자 전유성을 다시 보게 만든 것은 1997년에 출간된 ‘남해 문화유산 답사기’였는데, 전유성 표 유럽 배낭여행기로 2001년에 ‘남해 문화유산 답사기 2’가 나왔죠. 2007년에는 ‘삼국지를 거꾸로 보는 전유성의 구라 삼국지’ 시리즈로 10권이 출간했는데, 이렇게 전유성이 쓴 책이 모두 33권이니 작가란 말이 어울리는 사람인데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전유성은 코미디언 후배를 양성하는 선생이기도 하죠.

스태프들만 남겨놓고 몇 개월씩 집을 비울 게 뻔한데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진미령이 전유성에 대해 말하길 “느닷없이 전화해서 ‘나 일본이야’ 하는 사람”인데 자신 역시 “나도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합니다. 사실 전유성과 진미령은 혼인 신고를 하지 않고 사실혼 관계로 지내다 이혼을 한 건데요. 진미령이 이 이유에 대해서 털어놓길 “혼인 신고는 하고 싶지 않았던 이유가 그 밑으로 들어가는 게 싫었고 또 아이도 낳고 싶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난 나를 챙기기 바쁜 사람이다. 내가 모든 걸 하는 스타일”이라며 “둘이 성격이 안 맞아서 헤어지게 됐다”라고 이혼의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반면, 전유성은 과거 MBC ‘사람이 좋다’에 출연해 진미령과 이혼 계기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죠. 당시 “우리 딸 6학년 때 과외 선생님에게 사기를 당했다. 속일 거라고 생각 안 하고 그 사람 편을 끝까지 들었다”면서 “진미령 씨가 말렸는데도 내가 오히려 나무랐다. 진미령 씨 돈도 물렸다. 그 돈은 내가 다 물어주긴 했는데 그게 결정적으로 원인이 되어서 헤어지게 됐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만약 전유성의 말이 사실이라면 전유성에 대해서 안 좋게 말할 만도 하건만 진미령은 이혼하고 나서도 전유성에 대해서 싫어하거나 미워하거나 증오하는 게 아닌 애틋한 감정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진미령이 과거의 이혼 사유로 인터뷰한 내용은 조금 다릅니다. 진미령은 한 방송에 출연해 이혼을 결심하게 된 것은 한 그릇의 냉면 때문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진미령에 따르면 어느 날 전유성과 단골집에서 만나 냉면을 먹기로 했는데 진미령이 단골 냉면집에 도착했을 때 전유성은 이미 혼자 냉면을 다 먹고 난 후였습니다. 그리고 뒤늦게 도착한 진미령이 주문한 냉면을 먹으려는 순간 전유성이 “난 다 먹었고 먹는 것을 보는 건 지루하니 나 먼저 가겠다”며 나가버렸다고 합니다. 진미령은 그 순간 “냉면을 먹는 이 짧은 순간도 기다려주지 못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앞으로 인생을 함께 살아가는 건 힘들 것 같다”는 판단에 이혼을 결심했다고 속사정을 털어놓았죠. 이의 진행자 김수미는 “전유성은 굉장히 똑똑하고 착하고 순수한 사람인데 그의 특이한 인생관이 진미령의 생각과 맞지 않았던 것 같다”며 위로했습니다.

실제로 전유성은 굉장히 독특한 사람이기에 평범한 진미령이 받아주기에는 한계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한 토크 콘서트에서 전유성은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습관적으로 하는 말부터 바꿔보라고 권유한 적이 있는데요. “가수 최백호의 전시회에 방문했을 때 ‘전시회를 축하합니다’라는 화환이 수십 개였는데 ‘최백호 씨, 정말 근사한 일이네요’라는 다른 문구의 화환이 눈에 띄었다”라며 색다른 표현이 주는 힘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새해 인사와 장례식 근조 화환, 결혼식 청첩장 문구 등 일상생활에서 남들이 만들어놓은 언어 대신 자신만의 언어를 찾으라고 조언했습니다. 전유성은 “수십 년 전 이사 간 집에 살던 사람이 남긴 메모가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며 “평범한 인사가 아닌 평소 자주 시켜 먹던 음식점을 소개하며 행복하게 살라고 적힌 메모였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사 온 집에서 이런 메모를 발견하면 정말 기분이 좋고 남다른 느낌이 들 것 같습니다. 또 “지하철 개찰구 바에 붙은 ‘정관장 드신 분은 살살 미세요’라는 광고 문구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해내지 못했다는 것에 화가 난 적도 있다”고 하는데요. 그러면서 남들과 다르게 살기 위해서는 세상을 다르게 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전유성은 돈벌이랑 관계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하는데 “그게 자신을 일하게 하는 원동력이지 남이 만들어 놓은 일은 왠지 하기 싫었다”고 합니다. “내가 잘하는 일,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을 쫓다 보니까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다”고 하는데요. 이런 전유성도 나이를 먹다 보니 많이 마르고 야위어 건강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가족도 없이 혼자 사는 데 건강 관리는 제대로 하지 않다 보니 쓰러진 적도 있다는데요. 공연장 만들면서 받은 스트레스도 원인이었고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생겼던 위장병도 굉장히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위에 천공이 생겨 생명이 위독했고 몸무게 19.8킬로그램이 빠졌을 정도였습니다. 실제로 전유성이 기획한 ‘개나 소나 콘서트’에 사회를 보는 동안 몸을 가누지 못해 스태프의 부축을 받기도 했습니다. 요즘 75세면 건강한 사람들도 많은데 전유성의 건강이 심히 걱정이 되는데요.

실제로 연예계 주당으로 유명한 신동엽은 전유성에게 “형님은 보통 사람 100명이 평생 마실 만한 양의 술을 다 드셨지 않냐”라며 그의 어마어마한 주량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전유성은 예전에 “내가 술은 끊을 수 없는 거다. 술 끊으라는 이야기 하지 말아라. 난 술 끊으라는 사람을 끊겠다”라고 말했었다고 합니다. 갑자기 이번에 술을 끊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게 건강 문제도 있어서 술을 끊겠다고 하자 비웃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 사람들을 비웃어 주기 위해서 계속 금주 중”이라고 하는데요. 방송이라 우스갯소리로 넘겼지만 현재 건강이 좋지 않아 금주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여전히 인생살이가 서투르다고 고백하는 전유성은 스스로를 “음치도 몸치도 아닌 삼치”라고 했습니다. 지구에 처음 온 사람처럼 전유성은 내년에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현실화시키느라 바쁠 예정이라고 했는데 그의 엄청난 아이디어가 계속해서 세상에 나올 수 있게끔 쭉 건강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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