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금메달리스트 안세영이 이번 달 출전하기로 했던 국제대회 2개를 모두 불참한다고 통보했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부상이지만, 올림픽 금메달 직후 배드민턴협회를 향해 했던 비판이 논란으로 커지면서 부담을 느꼈고, 자신의 폭로에 대한 협회와 체육회의 반응에 환멸을 느껴서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안세영의 독기가 아닐까 싶은데요.
월드투어 슈퍼 750 일본 오픈과 전남 목포에서 개최하는 슈퍼 500 코리아 오픈에 불참하겠다는 건데요. 코리아 오픈 대회는 국내에서 열리는 데다 홍보 포스터에는 안세영 얼굴도 나와 있는 상태입니다. 두 대회 모두 지난해 안세영이 정상에 올라 올해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나가기로 했지만, 삼성생명은 안세영의 오른쪽 무릎과 왼쪽 발목에 부상이 있어 4주 가량 휴식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진단서를 협회에 제출했습니다.
그도 그럴 게 안세영은 22살의 어린 나이에 금메달리스트가 되었고, 세계 랭킹 1위를 달성할 정도의 실력을 가진 선수였지만 그동안 힘을 가질 때까지 폭로하는 것을 참아왔으니 억눌린 게 얼마나 많을까 싶습니다. 안세영은 세계 랭킹 1위였지만, 세계 랭킹 13위 인도 선수 신두에 비하면 현저히 낮은 수익을 낼 수밖에 없었는데요. 이것도 모두 협회의 방침 때문이었습니다. 배드민턴협회 메인 스폰서사의 라켓과 신발, 의류를 사용해야 하는데, 태극마크를 다는 순간 개인적인 후원을 받을 수 있는 여지는 줄어들고 반대로 협회나 대한체육회 차원의 후원사에 묶이게 되는 것이죠. 결과적으로 현재 대표팀 시스템만 보면 안세영을 비롯한 배드민턴 국가대표들은 많은 규정에 묶여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인기에 비해 적은 연봉을 받고, 수억 원대 스폰서십 계약을 맺은 다른 스포츠 톱스타들과 비교해 심리적 박탈감이 생길 수도 있는 구조인 것이죠.
포브스에 따르면 신두는 지난해 710만 달러(약 97억 원)을 벌어들여 미국 체조 스타 시몬 바일스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수입이 높은 여성 선수 16위에 올랐죠. 특히 신두의 상금은 10만 달러(약 1억 3천만 원)에 불과했지만, 상금 외의 수입이 700만 달러(약 96억 원)에 달했으니 차이가 느껴지실 겁니다. 하지만 협회 측은 “할 수 있는 만큼 지원했고, 지원이 소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눈높이가 다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안세영이 손흥민, 김연아에 맞춰진 눈높이가 기준이면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협회 선수를 감싸기보다 타 종목 선수와 비교하며 급을 나누는 발언을 했습니다. 애초에 타 종목 선수와 비교하는 발언을 협회 측에서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데요.
협회의 말만 보면 안세영이 마치 돈 때문에 협회에 반기를 든 것으로 보이지만, 안세영이 협회를 폭로하게 된 것은 선수 생명을 오래 이어나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안세영이 언급한 선수 보호의 핵심은 결국 낡은 시스템의 개선 필요성입니다. “같은 선수인 타이쯔잉은 국제대회에 전담 트레이너 2명과 코치 1명을 대동했고 천위페이도 이번 대회에 트레이너 2명을 데려왔는데, 이제껏 우리 대표팀 운영은 국제대회 성적이 상대적으로 좋은 복식 위주였기에 경기력 관리를 위해 개인 트레이너를 쓰고 싶다는 의견을 여러 차례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시스템 개선을 촉구했습니다. 또한 선수 육성과 훈련 방식이 단식, 복식별로 달라져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단식과 복식은 엄연히 다르고 다른 체제에서 운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독과 코치가 나뉘어야 하고 훈련 방식도 각각 체계적으로 구분돼야 하는데, 단식 선수들은 개개인 스타일이 다른데 그걸 한 방향으로만 가려고 하니까 어려움이 많지 않나 싶다”고 지적했죠.
대표팀 운영도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복식 종목을 중심으로 운영돼 왔다고도 합니다. 안세영은 “항상 성적은 복식이 냈으니까 치료와 훈련에서 복식 선수들이 우선순위였다”고 말하며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최고의 성과를 낸 자리에서 오죽하면 선수가 은퇴를 암시하는 말까지 하며 폭로를 했을까요? 이미 여러 번 내부의 의견을 얘기하고 바꿔보려고 시도를 했으나, 전혀 통하지 않았기에 지금과 같은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나 추측해 봅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배드민턴 선수 출신이었던 선배들이 안세영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언론에 인터뷰하며 노골적으로 협회 편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2004 아테네 올림픽 배드민턴 남자 복식 금메달리스트 하태권은 “아무래도 협회는 규정 안에서 배드민턴 발전을 위해 전체적인 시선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며 “협회는 이 종목을 원활하게 운영하기 위해 개인이 아닌 전체 선수 관리를 위해 규정과 규칙을 만들어 놨을 것이다. 협회가 그 규칙을 어기고 특정 선수에게 불이익을 줬다면 협회의 문제이고, 선수가 불만을 가질 만하더라도 협회가 기존 규칙대로 운영했다면, 선수의 문제”라는 발언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협회가 한 선수에게만 맞춰줄 수는 없다는 의견을 강조했습니다. 국가대표 출신인 방수현도 인터뷰에서 안세영의 발언을 비판했죠. 사실 어떻게 보면 모든 선수들이 부상을 가지고 대회에 나갈 수밖에 없고, 본인도 수술을 권유받았지만 수술하고 선수가 다시 회복하고 경기에 나가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훈련으로 만회하면서 시합을 나갔다고 합니다.
안세영 선수가 선수로서 1년도 안 남은 올림픽 준비를 해야 하는 부담이 많이 됐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협회에서 부상 대처를 잘못했다, 대표팀에서 그랬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본인이 혼자 금메달을 딴 게 아니라 안세영 선수를 위해 감독, 코치들도 대표팀에 들어가서 같이 훈련을 한 것이고, 그 밑에 후보 선수들이 그만큼 파트너를 해줬으니 협회 시스템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면 개선을 하면 된다면서 안세영 선수가 성급하게 인터뷰를 했다고 비판 아닌 비판을 한 것입니다.
게다가 협회에서 안세영 선수가 유망주였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지원이 갔고 지금의 안세영 선수가 된 것이라 생각하는데, 이 상황에 와서 협회한테 은퇴는 아니지만 같이 갈 수 없겠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따자마자 기쁜 와중에 말했다는 게 안타깝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하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용기를 낸 후배를 위해 편을 들어주지는 못할망정 언론에 대놓고 비난하는 의견을 내는 게 정말 선배의 역할이 맞나요? 심지어 배드민턴 협회가 투명하게 운영하는 조직이 아니라는 점도 점점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안세영 선수를 비난하고 협회를 편드는 같은 업계 동료, 선배들이 이상할 정도입니다.
전 협회 직원의 말에 따르면 김택규 회장은 자기중심적으로 협회를 운영했으며,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을 경우 욕하고 소리를 지르는 건 일상이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폭압적인 분위기로 인해 협회 내부에서는 아닌 것도 아니라고 말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며 일을 견디지 못하고 퇴사하는 직원도 있었고, 한 임원은 직원 회식 자리에서 “할 줄 아는 게 뭐냐”는 폭언을 듣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 주말과 휴일에도 직원들을 개인 기사처럼 부리고 과도한 의전을 요구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 송파구 협회 사무실이 아닌 본인의 거처와 회사가 있는 충남 서산까지 협회 직원을 주 2회 불러 업무를 처리하고, 주말과 휴일에도 직원을 개인 기사처럼 부렸다고 합니다. 한 직원은 “주말 전라남도에서 오전 11시 열리는 생활체육대회 참석하면서 서울의 직원을 서산으로 불러 이동했고, 평일 휴일 가리지 않고 개인 기사처럼 부리기도 했다”며 “하루에 1,000km를 운전한 것 같다”고 토로한 직원도 있었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협회를 마치 개인 사업체처럼 운영하고 직원들에게 갑질하며 자신의 지위를 이용한 배드민턴 협회 회장이 선수들을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을지는 안 봐도 뻔하겠죠. 역시나 선수들에게도 갑질을 한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심지어 배드민턴 협회로부터 제출받은 국가대표 운영지침에 따르면 협회는 배드민턴 국가대표 선수에게 선수촌 내외 생활과 훈련 중 지도자의 지시와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임무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협회는 “생활과 훈련 중 지도자의 지시와 명령에 복종”하도록 했고, “국가대표 담당 지도자의 허가 없이는 훈련에 불참하거나 훈련장 이탈 불가”라고 규정했습니다.
이걸 본 누군가는 선수를 케어하기 위해 당연한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협회 중 가장 공정하게 운영되는 양궁협회의 지침과 비교해보면 느껴지실 텐데요. 양궁 협회는 국가대표 선수가 따라야 할 지도자의 지시를 “경기력 향상을 위한 지시”, “정당한 인권 및 안전 보호를 위한 지시”로 한정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생활과 훈련 중”이라는 조건이 있으나, 조건을 만족한다면 지도자의 어떠한 부당한 지시라도 따라야 하도록 악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다분한 부분입니다. 상명하복이 엄격한 군인의 명령 복종 의무도 “상관의 직무상 명령”이라고 한정되어 있는데, 국가대표 선수가 훈련뿐만 아니라 생활 중에도 지도자의 지시와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은 거의 노예 계약이나 다름없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배드민턴협회가 국가대표 선수에게 부과한 의무가 다른 종목이나 군인에 비해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과도한 게 사실이며, 시대착오적이고 반인권적입니다. 배드민턴협회는 지금 안세영 선수와 진실 공방으로 다툴 것이 아니라 시대착오적이고 반인권적인 조항을 개정해 우수한 선수를 양성한다는 협회 본연의 임무에 집중해야 할 때가 아닌가요? 부디 배드민턴 협회 및 업계가 오직 선수만을 위한 운영을 했으면 좋겠고, 협회의 역할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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