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방의 감초로 불리며 시청자들의 웃음을 끊임없이 제조했던 배우 임현식이 한동안 볼 수 없었다가 지난 29일 한 방송을 통해 모습을 드러냈는데, 예전에 통통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너무나도 수척해진 모습으로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이날 임현식은 자신의 건강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하게 되는데, “나는 임플란트 6개가 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치아 6개가 흔들리더라. 딸 3이 남아있는데, 나라도 열심히 아내의 몫까지 다 해야겠다는 의무감이 나를 옥죄었다. 아내까지 떠나니까 이 집에 내가 혼자 있는 거다. 늦게 들어오면 나 혼자 새까만 집에 들어와서 불 다 켜야 하고…”라고 하며 당시의 적적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어 그는 “그러다 하루는 혼자 차를 운전하고 오는데 이상하게 심장이 아픈 거다. 어떤가 보자 하고 앉아있는데, 맥박이 뛸 때마다 가슴이 아프더라.” 이후 응급실에 가 심근경색 진단을 받고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았고, “그런데 아프고 나니 혼자 사는 게 보통 일은 아니더라. 나한테 또 어떤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해서 지금은 둘째 딸과 같이 살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배우로서 임현식은 자신만의 독특하고 창조적인 감초 연기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그의 인생에는 늘 여유와 웃음이 넘쳐 보였지만,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정작 인간 임현식의 삶은 야속하게도 그렇지 못했습니다. 한때 그는 누구보다 사랑했던 아내가 폐암으로 병원에서 머리를 깎고 누워있는데도, 매주 나가 연기를 하다 보니 자신이 무당인가 싶었다고 합니다. 또한 주당이라는 점 때문에 술을 먹고 운전하다 사람을 치여 재판을 받은 지 불과 1년 만에 또다시 무면허 음주운전으로 무려 7차례나 적발되어야 했던 ‘순돌이 아빠’ 임현식의 떳떳하지 못한 인생을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945년 해방둥이로 태어난 임현식은 6살이 되던 해 6.25 전쟁이 일어나 당시 신문기자였던 아버지가 다른 기자들 7명과 함께 취재차 북한으로 떠난 뒤 그 길로 돌아오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33살의 나이로 실종되면서 26살의 과부가 된 어머니는 이후 어린 자식들만 바라보고 살게 되는 기구한 운명이 되고 말았고, 그럼에도 당시 음악 선생님이었던 어머니가 없는 살림에도 자식들에게만큼은 아낌없이 지원을 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임현식이 그 어려운 시절 바이올린을 배워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곤 했습니다. 참고로 훗날 ‘한 지붕 세 가족’에서 임현식이 실제로 바이올린 연주를 선보인 바 있는데, 당시 뭐든 잘하지 못한다고 슬퍼하는 아들 순돌이를 위해 “아빠도 처음에는 잘 못했지만, 연습하다 보니 이렇게 연주를 잘 할 수 있잖니”라며 바이올린을 멋들어지게 연주하고 마무리 짓는 멋진 장면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한편, 어린 시절부터 여자를 좋아했던 임현식은 당시 학교를 걸어갈 때 항상 마주치는 교복 입은 여자들을 보며 “오늘은 어떤 기분으로 만날까” 하고 기대하며 학교를 갔다고 하는데, 그래서 마주칠 만한 길에 가기만 해도 얼굴이 빨개지는 느낌과 함께 엔돌핀이 뿜어져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좋아했던 게 연극과 영화로, 어머니를 따라 영화관에도 자주 드나들었던 그는 고교 시절 연극반 활동을 하며 이후 자연스레 연기자의 꿈을 꾸다 1년 재수 끝에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하게 됩니다. 그러다 MBC가 개국하면서 공채 탤런트를 뽑는다는 말에 임현식도 시험에 응시를 했고, 하지만 이때 임현식의 집안에서는 “저거는 지가 뭔데 배우를 하냐”며 “큰아버지 계신 춘장으로 내려가 정미소 일이나 하지”라며 사람으로 보지도 않았기에 그에게 있어 탤런트 시험 합격이 누구보다 간절했습니다. 아무튼 당시 MBC 1기 공채 탤런트 26명 선발에 5천 명이 지원을 해 이후 7차까지 시험을 쳤는데, 놀랍게도 임현식이 수많은 관문을 통과해 최종 36명까지 들어가게 되면서 마지막 관문인 MBC 사장 면접만 남겨놓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MBC 사장이 임현식의 얼굴을 보고 “배우를 하기에는 얼굴이 좀 밋밋하다”고 하자 떨어질 것 같던 그가 “MBC에 내 인생을 완전히 바치고 싶다”는 소신을 강하게 밝혀 그의 의지가 좋게 보였는지 결국 공채 탤런트로 당당히 합격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후 그가 맡게 되는 역들은 하나같이 엑스트라나 잡범들뿐이라, 안 풀려도 너무 안 풀렸고 그래서 당시 그가 단역 출연으로 몇 푼이라도 받으면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며 “나는 왜 이럴까” 하고 한탄하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러다 1978년 김수현 작가의 일일 연속극 ‘당신’에 출연하게 된 임현식은 당시 모든 연기자들이 신성일처럼 연기하려고 할 때 자신만의 색깔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어디에도 없던 새로운 맛깔난 스타일로 연기를 하자 MBC 공채로 입사한 지 7년 만에 방송 연기 대상에서 조연상까지 받게 되는 기염을 토해내게 됩니다.
이후 1986년에는 ‘한 지붕 세 가족’에서 순돌이 아빠 역을 맡아 푸근한 인상과 평범한 서민 가장 이미지로 일찍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가장 많은 사랑을 받게 되는데, 당시 그는 드라마 속 좋은 이미지 덕분에 주연 배우들 못지않게 광고 모델 섭외도 줄을 잇게 됩니다. 하지만 순돌이 아빠 임현식은 그간 경험하지 못한 인기에 정신이 없었는지, TV 속에서 보여주던 푸근한 이미지와 다르게 무면허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돼 큰 충격을 주게 됩니다. 당시 그는 술을 마시고 면허도 없이 운전을 해 팬 여러분에게 실망과 걱정을 끼쳐 죄송스럽다면서, 하지만 이미 방송사 드라마 촬영 약속 등이 잇따라 잡혀 있어 구속돼 재판을 받게 되면 곤란한 점이 있다며 불구속 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했던가요? 이후에도 술만 먹었다 하면 운전대를 잡더니, 결국 사람까지 다치게 해 또다시 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후 불과 1년 만에 또다시 음주운전에 걸려 적발되고, 사과하고 적발되고 사과하기를 반복하다 총 7차례나 음주운전으로 적발되는 엄청난 만행을 저지르게 됩니다.
사실 지금 시대에 배우가 7차례 음주운전을 했다면 활동을 한다는 게 절대 불가능하지만, 당시 시대 환경이 그랬던 만큼 이런 사실 자체가 잘 알려지지 않았기에 결과적으로 임현식은 계속 활동할 수 있었고, 심지어 이후 자동차 광고에도 출연하는 등 사회에서나 자신 스스로도 문제의식이 전혀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기준에서는 언론과 인터넷도 활발히 발달하고 삼진아웃 제도가 있는 터라 조형기가 지금 못 나오듯이 임현식도 2000년대 이후부터 활동이 현저히 줄게 됩니다. 물론 본인의 건강 탓도 있겠지만, 음주운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면서 아무리 과거에 둔감했던 시대상의 관행을 감안하더라도 7번의 음주운전은 해도 해도 너무하다 보니 시청자들도 그를 꺼려하는 게 사실입니다.
아무튼 그럼에도 그는 2004년 ‘대장금’을 통해 오히려 배우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하지만 이 무렵 멀쩡하던 아내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폐암 말기 진단을 받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당시 임현식은 연말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가 1등 상품으로 받은 건강검진권을 통해 아내의 병을 알게 되는데, 이와 관련해 그가 고백하길 “아내한테 선물로 줬더니 굉장히 좋아하더라. 그런데 거기서 뜻하지 않게 폐암 말기라고 나왔다. 갑자기 많이 전이가 되니까 척추까지 전이가 됐었다. 그런데 이때가 ‘대장금’ 촬영 중으로 촬영을 안 갈 수 없지 않나. 촬영장 가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해야 했다. 틈날 때마다 병원에 갔다. 아내가 틀림없이 나를 기다릴 테니까. 나중엔 의식이 왔다 갔다 할수록 옆에 있어야겠다. 내 목소리를 들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이 무렵 임현식은 어머니를 잃은 뒤 2년 만에 겪은 일이라 충격과 아픔이 더욱 컸고, 그럼에도 배우로서 임현식은 당대 최고의 드라마 ‘대장금’을 통해 주연보다 더 빛나는 조연이라 불리며 그야말로 속과 겉이 완전히 다른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오죽했으면 그는 그런 순간에도 연기를 하다 보니 자신이 무당 같다고 했을까요. 그러나 병마와 싸우고 있는 아내를 위로하고 우리 국민이 암의 고통에서 하루빨리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에 비록 음주운전은 잘못됐지만, 당시 암센터에 1억이나 기부하는 옳은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아내와 사별한 임현식에게 재혼을 안 하냐고 묻자 그가 대답하길 “내가 와이프가 그렇게 되니까 후배들이 박원숙 선배와 잘해보라고 하더라. 후배들이 부추기긴 했지만, 박원숙과의 관계는 전우애다.”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임현식이 고백하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욕심 없는 삶을 살고 싶다. 70 넘게 살면서 드라마 일에만 신경 썼다. 더러 좋은 배역을 맡지 못하면 섭섭하기도 했고. 하지만 이젠 그런 것에서 벗어나 지난날들을 추억하며 그리운 사람, 좋은 일들을 되돌아보고 싶다. ‘외로움도 즐거움’이란 말이 있듯 마음을 비우고 많이 생각하는 삶을 살려고 한다. 그리고 요즘에는 사람의 전성기는 60~70대인 것 같다. 나도 그때 일을 제일 많이 했다. 유용하게 늙은이답게 넘어지면 지팡이라도 짚고 일어나서 견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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