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문희 씨의 남편 유윤식 씨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가운데 수많은 연예계 동료들이 조문 행렬을 이어가며 애도를 표했습니다. 나문희 씨는 비보를 접하고 세 딸과 사위 손주들과 함께 상주로 빈소를 지키고 있는데요. 워낙 예능계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왔던 나문희다 보니 다들 남편상을 조문하기 위해 빈소까지 찾아갔고 아마 그곳에는 지상파 삼 사의 드라마 피디들이 다 모였을 것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빈소는 서울 진관동에 있는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에 마련됐으며, 3일장으로 조문을 치른 뒤에는 일산의 위 치안 장지로 이동해 수목장으로 장례를 진행한다고 합니다. 나문희 씨의 남편 유윤식 씨는 정년퇴임한 전직 영어 교사로 5개 국어가 능통했다고 하며 정년퇴임 후에도 전시회를 열 정도로 그림에 몰두했지만, 이번에 학년 90세로 별세했는데요.
현재 나문희는 슬픔 속에 빈소를 지키고 있는데, 다수의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국민 배우로 살아온 그녀는 남편과 함께 화목한 가정을 이루며 새 딸을 키웠습니다. 나문희 씨는 자신은 지금까지 연기에 미쳐 있었고, 딸들에게 시원찮은 엄마였다며 어릴 때부터 딸들은 애들 아버지가 키우고 교육도 시켰다고 말했는데요. 나문희 씨는 촬영장에서 자신이 직접 화장실 순수를 했고 자신은 화면에 한 컷도 거짓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피 속마저도 서민으로 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나문희의 세 딸 중 두른 음대에 입학시킨 것으로도 유명한데 첫째, 딸은 이화여대 음대에서 피아노 전공을 그리고 둘째, 딸은 서울대 음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지만, 셋째는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딸들 중 한 명이라도 연기자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딸 애들이 싫어했다고 하죠. 남편과는 중매로 만난 나문희는 가족에 대한 사생활이 밝혀지는 걸 꺼려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방송에서 남편에 대한 언급은 잘하지 않았는데요.
남편과의 첫 데이트 때 합승 택시를 타고 덕수궁 근처 덕수장이라는 한식당에 가서 칼국수를 먹었는데 당시에 계산하는 남편의 헌 지갑을 보고 낡은 지갑이었지만 소중히 갖고 다니는 모습이 상당히 매력적이어서 반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밥을 먹고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는데 원래 영어 선생님이었던 남편이 자신에게 프랑스 시를 낭송해 주며 꼬시려고 했다고 회상했는데요. 사실 남편의 첫인상은 별로였지만 두 번째 데이트로 등산을 할 때 남편이 남자라고 느껴졌고 첫 키스는 대략 삼 에서 4개월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했다고 합니다.
덕수궁에서의 첫 만남부터 안국도 산책 그리고 결혼에 이르기까지 까지 그녀의 이야기는 두 사람의 따뜻한 사랑을 보여주었지만 나문희 씨는 남편이 대장함으로 별세하기 전까지 투병 당시 힘든 시간을 보냈음을 공개했는데요. 나문희는 남희석 최은경의 여유만만에서 남편의 대장암 투병 경험을 언급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는데 남편의 정신력이 대단하다며 혼자 참는 모습이 딱하기도 했다고 말했죠.
나문희는 어릴 때 수원에서 나 부잣집이라고 하면, 동네에서 모두가 알 정도로 부잣집 집안의 규수였다고 합니다. 나문희의 고모할머니는 한국 최초의 서양 화가로 알려진 나혜석인데 틀에 박힌 여성상을 거부하고 1900년대 근대 신여성의 효시로 불렸고 독립운동가로도 활동한 분인데요. 어릴 때 아버지가 중국에서 나혜석 집안의 중국 공장을 같이 도와주었었 때문에 나문이는 중국에서 태어났는데 화교 출신 신이나 중국 국적으로 알고 계신 분들도 많지만 대한민국 국적이고 중국 베이징에서 5살까지 살았다고 하죠. 베이징에서 살다가 수원으로 이사를 오게 된 나문이는 1961년 성우 일기로 데뷔를 하게 되었고 티비 계곡 초창기 시절 성호가 배우를 겸하는 경우가 많아 나문희 역시 이때 배우로 전업을 하게 되었는데요.
당시 드라마와 연극 영화에서 활동을 했는데 큰 활약을 보이지는 못한 게 당시 나문 이는 키가 큰 편이었고 동료 남자 배우들보다 체격이 크다는 이유로 눈에 잘 안 띄는 조연과 단력을 맡았다고 하죠.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면서 먹는데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에 키도 잘 크고 성장 팔육이 좋았지만 그것이 나중에 배우 생활을 하는 데는 걸림돌로 작용하게 되었던 것인데요.
당시 동년배 배우였던 김혜자 정혜선 김용님도 동료 여배우들이 주요 배역을 맡았고 7,80 년대엔 그녀들이 연기 대상을 수상하기까지 하며 승승장구를 했지만, 나문희는 주로 어머니 역할을 많이 맡으며 주연으로는 활약하지 못하고 조연과 단력을 전전에서 80년대까지 30년간의 연기생활 중 받았던 상이라곤 1983년 MBC 연기 대상 우수상 한계에 불과했을 정도였죠 그렇게 나문희는 오랜 시간 무명배우로 지내게 되었고 시간이 많이 흘러 54살이 되던 1995년 드라마를 통해 KBS 연기 대상을 수상하면서 전성기를 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후로 영화 드라마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작품에서 좋은 연기력을 보여주며 지금의 자리까지 있게 되었고 위 사진은 1975년 일일 드라마 여고 동창생에서 배우 김혜자 씨와 함께 출연한 시절인데 이때까지도 김혜자는 온갖 트로피 휩쓸며 승승장구했지만, 나문희는 이름 석 자조차 제대로 알리지 못한 시절이었습니다. 본격적으로 나문희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50세 이후인데 그중에서 2006년 가족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큰 인기를 모았고 호박 고구마는 지금까지도 수많은 패러디 명대사로 활용되고 있죠. 그리고 흥행작 수상한 그녀에서 욕쟁이 칠순 할매 오말순 역과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는 김영옥 신구 고두심 윤여정 등의 연기 스파 노장 배우들과 함께 노년의 삶을 보여주며 호평을 받기 시작했는데요.
특히 70대 나이의 첫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게 해 준 영화 아이 캔 스피크로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으며 많은 이들에게 큰 감동과 눈물을 주었는데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2007년 미국 하원에서 영어로 위한 큰 부피의 사실을 연설해서 큰 감동을 줬던 이용수 할머니의 실화를 담고 있는 영화입니다. 늦은 나이에도 실감나는 연기와 잔잔한 감동으로 각종 여우주연상을 휩쓸었고 배우 황정민은 나이를 먹어도 배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해준 나문희 선생님을 존경한다고 밝힌 것처럼 나문희와 호흡을 함께 맞춘 후배 배우들은 누구나 롤모델로 삼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배우 설경구는 나문희 선생님처럼 시나리오가 너덜 떨러덜해지도록 읽고 또 읽는 분을 밴 적이 없다고 할 만큼 깨끗한 자신의 대본을 보고 부끄러웠다고 말한 적도 있는데요.
나문희는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딸들을 보낸 대신 남편이 교육적인 부분을 담당 당했다고 말할 만큼 연기가 더 중요했다고 하는데, 만사 제쳐놓고 해야 하는 연기가 남은이의 전부였던 것이죠. 나문희는 남편과 함께 방송에 출연한 적이 없는데 사생활을 잘 언급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내가 나를 잘 알아서 그래요. 제가 원래 순발력도 약하고 드라마에서 이것저것 많이 보여주는데 사실 나조차도 그런 내 모습이 보기 싫을 때가 많거든요.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싶어요. 어디 예능 같은 작품 나가서 독자나 시청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으면 좋지만 내 욕심만큼 안 될 것 같아서 조심하는 거예요라고 말했는데 사실 나문희만큼 연기력을 높게 평가받고 또 호감인 연기자도 별로 없는데 스스로 조심하는 삶을 살고 있었죠. 역시 나이와 경유는 그저 얻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70대 나이에도 여우 주연상을 받았다는 것은 대한민국 여배우들에게도 의미 있는 희망을 주기도 하였죠 지금도 언제나 쉬지 않고 연기에 대한 갈망과 끊임없이 노력하는 나문희는 많은 동료 배우들에게도 롤모델이 되고 있는데요. 사실 나문희보다 연기에 재능이 있었던 성우 출신 배우들도 많았지만 그런 사람들은 현실에 대한 울분으로 끝내 좌절하고 말았죠 실제로 나문이는 가정부나 동네 아줌마 같은 비중 작은 역할이나 술집 마담이나 다방 주인 같은 이미지가 안 좋은 역할을 맡았는데 나문희는 비록 작은 역이었지만 내가 아니면 아무도 소화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연기를 했어요.
사실 역할은 내가 하면 좋겠다며 당시 주연 배우들을 부러워한 적도 있었지만 배우가 나보다 더 연기를 잘하기 때문에 역할을 맡은 것이라면서 마음을 고쳐 먹었기 때문에 좌절하지 않았어요라고 그리고 또 누구한테 말했는데요. 드라마 작가 노희경 씨도 나문이에 대해 누가 배우 나문이를 한마디로 말하라면 저는 세상에서 가장 욕심 많은 배우라고 대답할 거예요.
누가 인간 나문희를 말하라면 저는 화면에 단 한 컷도 거짓이었던 적이 없었던 인간이라고 답할 거예요. 나문이는 늘 서민의 어머니로 살면서 사람들이 보지 않는 순간에도 길거리나 잠자리에서도 서민으로 살아야 한다고 했어요. 피속마저도 거짓은 안 된다고요라고 말했는데요. 작년에 영화 아이 캔스피크에서 배우 나문희가 맡았던 나옥분 역의 실제 모델인 김복동 할머니의 별새 소식이 전해지자 나문희는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를 방문해 추모의 뜻을 밝혔습니다. 빈소를 찾아온 나문희는 뉴스를 통해서 김할머니의 부고를 접했다며 너무 고생하셨다 날개를 달고 편한 세상에 가셨으면 좋겠다고 전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김복동 할머니의 용기 노력은 많은 분들에게 위로가 됐다라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리고 해결하기 위해 평생을 힘써 오신 김복동 할머니의 노력을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애도를 표했는데요.
주인공이든 단역이든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드라마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어떤 배역이라도 자신은 작지 않다는 자신감으로 일을 해왔다고 말하는 나문희 씨 한국 연극과 영화계에 살아있는 전설인 나문희는 그녀의 뛰어난 연기력과 다양한 작품 활동으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왔고 그녀의 인상적인 연기는 오랜 세월 동안 한국 문화 예술의 깊은 발자취를 남겼는데요. 나문희 씨는 재치 있고 소탈한 성격에 남편이 대장암 투병 당시 힘든 시간을 보냈음을 공개한 바 있고 남편이 강한 정신력으로 투병 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눈시울을 붉혔죠 유윤식 씨의 별세 소식은 나문희 씨의 팬들에게도 큰 슬픔을 안겨주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애도의 뜻을 표하고 있습니다. 남편을 잃은 슬픔이 얼마나 클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