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슬링 하면 누가 떠오르시나요? 아마 다들 심권호 씨가 생각나실 겁니다. 그만큼 그는 한국 레슬링계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런데 그런 그가 최근 무척이나 수척해진 모습으로 등장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청정 구역도 그의 이런 모습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심권호와 관련된 소식을 찾아보게 되었는데요. 그런데 과정에서 그의 최근 모습보다도 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충격적인 사실이 무엇인지 심권호 씨의 일대기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아가 안현수 씨와 연관된 이야기도 들려드리도록 할게요 심권호 씨는 워낙 대단했던 레슬링 선수였기 때문에 아마 글을 모르는 분들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가 어느 정도로 대단한 선수였는지는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심권호씨와 레슬링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그가 레슬링으로 얼마나 대단한 업적을 세웠는지를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작은 키의 빠른 스피드가 장점인 심권호 씨의 기록을 보며 많은 이들이 신고 노는 천재다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 심권호 씨는 자신은 그냥 레슬링이 좋아서 열심히 했을 뿐이라고 하네요. 그럼 대체 그가 어떤 기록을 세웠기에 심권호 씨를 천재라고 여기는 평가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일까요?
심권호씨는 레슬링계의 세계 유일 두 체급 그랜드 슬램 달성자입니다. 참고로 그랜드 슬램은 올림픽 아시안게임 세계 선수권 대회 아시아 선수권 대회 이렇게 네 개의 대회를 모두 석권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심권호 씨는 이렇게나 어려운 그랜드 슬램을 한 번도 아니고 48킬로그람 54킬로그람, 즉 무려 두 체급에서 성공한 것이죠. 그런데 그가 두 체급의 그랜드 슬램에 도전하게 된 조금은 안타까운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
과거 어느 날 심권호 씨가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레슬링 48킬로그램급 경기가 갑자기 올림픽에서 사라지게 된 적이 있습니다. 이후 그는 큰 슬럼프를 맞게 되죠. 자연스레 많은 사람들은 그가 이번 일을 계기로 은퇴를 할 것이라 예상했죠. 하지만 심권호 씨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체급을 올리기로 결정합니다. 어떻게 보면 은퇴를 하지 않기 위한 그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셈이죠.
당시 많은 이들은 체급을 올린 그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심권호 씨는 피나는 노력 끝에 그동안의 슬럼프를 이겨내고 결국 54킬로그램에서도 그랜드 슬램을 달성합니다. 이 정도면 왜 그가 레슬링계에 올 뉴타임 넘버 레전드라고 불리는지 답이 충분할 것 같네요. 애틀란타 히드니 올림픽에서 이 연패를 기록했던 그는 이후 또 다른 도전을 하기에 이릅니다. 그것은 바로 올림픽 삼 연패 참고로 올림픽 삼 연패를 달성한 선수는 전 세계 올림픽 역사를 통틀어 딱 5명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는 위대한 업적을 달성하기 위해 누구보다 구슬땀을 흘리며 노력하였습니다. 또한 당시 적수가 없을 정도로 워낙 레슬링계의 강자였기 때문에 많은 이들도 그의 삼 연패를 무난히 점쳤었죠. 그런데 꿈은 어이없는 이유로 좌절되고 맙니다. 2004 아테네 올림픽에 나가보지도 못하고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떨어져 버렸기 때문인데요. 세계에도 적수가 없었을 만큼 강했던 심권호 씨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그는 우리나라 선발전투에 약간의 일들이 많았어요.
안현수하고 비슷한 이라는 충격적인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결승전에서 일 부 30초를 잡고 있는데, 심판이 폴을 안 때리더라 원래 1초만 잡고 있어도 끝나는 건데 라는 말을 덧붙이죠. 게다가 당시의 협회가 이미 선수를 내정한 상황이었다고 하는데요. 그는 이런 부조리한 상황으로 인해 정말 어이없이 삼 연패의 꿈을 접어야 했고 상실감에 결국 은퇴를 선언하게 됩니다.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만약 그때 그가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그는 삼 연패를 달성했을 거라 확신합니다. 근거는 심권호 씨의 히스토리에 있습니다. 그는 태링에 처음 들어간 후 6개월에서 1년 동안은 하루에 한 번씩 울었다고 합니다. 160 센티미터에 42킬로그램이라는 너무나 왜소한 체격이었기 때문에 더 힘든 시간을 보냈다던 그 옥상에 올라가 별을 보며 늘 마음을 다잡아야 했던 19살의 어린 심권호 씨는 레슬링을 하는 기쁨 하나만으로 힘든 시기를 버텨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그는 레슬링밖에 모르는 레슬링을 하려고 태어난 사람이었던 거죠. 참 생각지도 못한 협회의 부조리로 올림픽 협회라는 대업을 어이없이 포기하게 된 심권호 씨를 생각하니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드네요. 한편, 협회에 부조리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심권호 씨도 직접 언급한 바 있는 빅토르 안인데요. 과거 빅토르안은 파벌 싸움의 희생양으로 알려져 러시아 귀화 당시 한국인들에게도 많은 격려와 위로 그리고 응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그는 파벌 싸움의 피해자가 아니라 파벌 싸움의 수혜자였다고 하죠. 이런 사실은 최근 빅토르 안이 중국 쇼트트랙 코치진으로 활동하면서 더 집중 조명되었습니다. 피해자인 척 국적을 바꾸더니, 자신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러시아를 등지고 중국으로 넘어간 빅토르 안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던 것이죠. 최근 빅토리아는 한국으로 돌아와 국적을 회복할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근황이 전해지며 그를 사용한 비판의 강도는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사실 심권호 씨도 아테네행이 좌절되고 빅토르 안처럼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다른 나라의 선수로 활동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그는 다른 선택을 했고 여전히 고국에 남아 한국 레슬링계를 위해 이바지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자기 이익을 쫓아 러시아로 갔다가 다시 중국으로 갔다가 이제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려는 빅토르 안의 모습과 승고 러 씨의 모습을 비교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네요.
은퇴 후 올림픽 챔피언이라는 캐릭터와 유쾌한 입담으로 해설자와 코치에 도전한 그는 여러 방송 활동에도 출연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갔습니다. 하지만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야 IC 등에 감탄사를 늘어놓으며 해설자가 아니라 선수의 코치인 듯이 반응하는 그의 해설 방식에 큰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일로 결국 그는 해설자 자리를 내려놓아야만 했습니다.
이후 글을 볼 수 있는 매체는 예능 프로로 한정 지어졌는데요. 그런데 한 예능 방송에 출연한 그의 상태는 굉장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바부진 몸매와 혈색 도는 외모를 가졌던 선수 시절이 상상도 되지 않을 정도로 심권호 씨의 얼굴은 굉장히 수척해 보였습니다. 그 이유는 알코올 의존증으로 밝혀졌고 그로 인해 뇌와 관까지 망가진 상태였다고 하죠. 거기다 49세라는 나이에도 여전히 싱글로 살고 있는 그의 일상이 공개되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아니 대체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건강이 망가지고 가정을 꾸리지도 못했을까요? 아마 심권호 씨에게 가정이 있었다면 그의 알코올 의존증도 조금은 개선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홀로 지내고 있죠. 대체 이유는 무엇일까요? 심권호 씨가 돈이 없어서인 것도 아닙니다. 그동안 획득한 메달이 몇 개인데 연금만 해도 생활이 가능한 수준이겠죠.
그리고 심권호 씨의 어머니가 재테크에 굉장히 능하셔서 그는 몇 채의 건물을 가지고 있는 상황 또 레슬링 선수로 활동했을 당시 LH 부장으로 승진까지 하여 회사생활도 했었다고 하죠. 즉 그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충분한 경제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심권호 씨도 좋은 여성을 만나고 싶다는 속마음을 내비친 적이 있죠. 갖출 거 다 갖추고 결혼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도 심권호 씨가 끝내 결혼을 하지 못한 이유는 아마 그가 과거에 겪었던 상처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심권호 씨는 29살 때 사귀던 여성에게 배신을 당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가 혹독한 연습으로 힘들 때 그에게 다가왔던 그녀는 갑작스럽게 이별을 고했다고 하죠. 상상하지 못했던 이별에 힘들어하고 있을 때 그를 무너뜨리는 소식 하나가 전해졌다고 합니다. 그녀가 헤어진 지 얼마 안 돼요.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다는 소식이었죠. 하지만 그에게 진짜 상처를 준 일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는 더 황당했던 것은 여자가 얼마 뒤에 이혼을 했는데 저에게 다시 연락을 하더라구요. 당시에 저희 현역 은퇴 방송도 많이 나왔고 과거 업적도 조명받고 했는데, 그런 상황에서 다시 연락이 오니까 마음의 상처가 되더라구요.
매몰차게 심권호 씨를 차고 곧바로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한 것도 모자라 이혼 후 다시 연락을 한 거죠. 이후 그는 쉽게 여자에게 마음을 주지 못하고 독신으로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음의 상처와 극심한 외로움은 알코올 의존증을 더욱더 심하게 부추겼겠죠.
레슬링계의 한 획을 그은 전 세계적으로 위대한 선수의 현실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네요. 참 씁쓸합니다. 선수 시절 연인 관계에서 많은 상처를 받았을 심권호 씨가 상처들을 치유해 줄 수 있는 좋은 인연을 만나시길 진심으로 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