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불암은 1939년에 인천에서 태어났습니다. 옛날에는 아이를 낳고 1년 정도 키워보고 죽지 않으면 출생신고를 했기 때문에 최불암의 프로필에는 1년 후인 1940년에 태어난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데요. 무녀 동남 외아들이었던 그는 안타깝게도 6살밖에 안 된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하늘로 떠나보내게 됩니다.
그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시절 임신한 부인을 국내에 두고 독립운동을 하는 형제들을 따라 중국으로 들어가 해방이 될 때까지 사업을 하며 돈을 모았는데요. 해방이 되자 만주에서 인천까지 말을 타고 귀향한 아버지는 인천의 영화사와 인천일보사를 차렸으나 직접 제작한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그렇게 당시 6살에 불과했던 최불암은 부친의 영정을 들고 영화 시사회에 참석하는 슬픔을 맞이하게 됩니다.
미망인이 된 어머니는 이후 생계를 위해 서울 명동에서 은성이라는 대포집을 열었는데 그곳은 금방 이름이 알려지며 소설가 이봉구와 시인 김수영 등 당대 문화인들의 사랑방으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당시 본명이 최영안이었던 최불암은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곁에 남은 어린 영환이 무탈하길 바라며 숙부가 불암산의 지명을 따서 불암이라는 이름도 지어주게 되는데요.
그렇게 홀어머니 밑에서 외로이 자란 최불암은 어린 나이부터 그만 수차례 죽을 고비를 맞이하게 됩니다. 하루는 친구들과 우물 근처에서 놀다가 날씨가 너무 더워서 우물 안에는 얼마나 시원할까란 생각이 든 최불암은 결국 아이들 네 명이 붙잡아주는 두레박을 타고 우물 속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한참을 내려가니 정말 시원함을 느꼈던 최불암 하지만 아이들이 하중을 이기지 못하고 두레박줄을 놓치는 바람에 최불암은 우물 속으로 풍덩 빠지게 되는데요. 아이들은 공포심에 도망갔고 홀로 남은 최불암은 우물 안에서 소리치며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게 됩니다.
그는 우물 아래에서 위쪽을 바라보니 우물 구멍이 정말 작아 보였고 자기 혼자 있다는 적막감에 숨이 막히게 되는데요. 결국 최브라만 아이들이 수의 아저씨를 불러와서 겨우 밖으로 나올 수 있었고, 몸이 흠뻑 젖은 채로 아저씨에게 엄청 맞으며 혼이 나게 됩니다. 이후 성인이 되어 배우가 된 이후에도 연극배우 시절 햄릿의 공연에서 8미터 정도의 계단 맨 꼭대기에 올라서 독백 연기를 해야 했는데 당시 무대는 최불함을 비추는 핀 조명 외에는 무척 어두웠던 데다가 특히 조명이 최불암의 얼굴로 직접 비추니 시야가 확보가 안 된 상태에서 계단인 줄 알고 발을 내디뎠는데 허공이었고 그만 바닥으로 추락하고 말게 됩니다.
그런데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모습을 본 관객들은 박수를 치게 되는데 그것은 마침 대사와 최불암의 모습이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추락후 숨이 탁 막혔다는 최불암은 나중에 보니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이 다 앞으로 있었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는데요.
그렇게 연극배우로 활동한 최불암은 외아들의 홀어머니의 수입도 적었던 데다가 외모도 잘생기지 못해 아주 별 볼 일 없던 연극배우로 활동을 하던 중 티비에서 본 톱스타 김민자가 마음에 들어 수소문을 한 끝에 방송국에 들어가 매점에서 김민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렸고 정말 김민자가 나타나자 멀찌감치서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리다가 그녀가 커피를 다 마시고 나오려고 하자 자신도 일어나서 몰래 김민자의 커피값을 계산해 주게 됩니다.
최불암은 김민자가 누구신데, 계산을 하느냐고 묻길래 최불암입니다. 하고 자리를 떴는데요. 사실 김민자도 최불암이 등장하는 연극을 봤었던 터라 배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최불암이라는 이름을 듣고서는 이름이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최불암은 연극배우 시절 최불활이라는 별명으로 동료들에게 놀림을 받곤 했기 때문이었는데요.
불암은 김민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녀가 출연 중인 드라마 피디에게 찾아가 자신을 이 드라마에 꼭 한 번만 출연하게 해달라고 사정한 끝에 그녀와 한 드라마에 출연할 수 있었고, 그렇게 그녀를 향한 대시에 결국 김민자도 최불암과 4년간 연애를 하게 되었지만 결혼을 하려고 보니 최불암의 조건이 너무 나빠 주변의 반대에 부딪히게 됩니다. 김민자의 친한 친구들은 최불함이 싫어서 그녀를 안 보기도 했고 가족들도 최불암을 반대했는데요.
사람들이 다 반대하니 이 결혼은 위험한가 싶었던 김민자는 그런데 자신이 이 사람을 놓으면 나쁘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들게 되었는데 술 담배를 좋아해서 좌절할까 봐 걱정도 됐고 복잡한 감정이 생기면서 결국 김민자는 이 사람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으로 결심을 하며 결혼까지 골인하게 가족은 어머니뿐인 가난한 배우로 당대 미녀 톱 탤런트와 결혼을 하게 된 최불암 하지만 신성일과 최무룡이 최고였던 시절 최불암은 잘생기지도 못했고 더군다나 맞는 배역마다 실제 나이보다 늙은 노역만을 맞게 되는데요.
드라마 제 일 공화국에서 젊은 나이의 80대 이승만 대통령을 맡는 등 노역 전문의였던 최불암은 포기하지 않고 꿋꿉이 연기를 한 끝에 결국 인생을 바꾼 작품 수사반장을 만나며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수사반장에서 최불암은 김상순 조교만 남성훈과 함께 열연을 펼치며 무려 18년간 880회나 방영되었을 정도로 뜨거운 사랑을 받았고 심지어는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까지 드라마가 사랑을 받게 되는데요. 그러다 하루는 일요일 수사반장이 끝났을 때 부속실에서 전화가 왔다고 집사람이 그러게 돼 최부람은 부속이 뭐직 그러면서 전화를 받았는데 수화기 속에서는 영부인전하십니다 하는 어떤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게 됩니다.
그러고 기다리니 잠시 후 수화기에서는 누가 웃으면서 저 유경수예요. 하는 목소리가 들리게 되는데요. 깜짝 놀란 최불암은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속으로 뭔가 큰 죄를 지었구나 싶었지만 알고 보니 유경수 여사는 최불암에게 급중해서 담배를 좀 줄여달라고 부탁을 하려고 전화를 했던 것이었습니다.
당시 최불암은 극 중 항상 담배를 네 번 피우는 설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시작할 때 한 대 수사 도중 두 대 사건이 해결되면 또 한 대 이런 식으로 해봐야 한 시간 하는 드라마에서 네 번이나 피우니 그걸 보는 박정희도 짧은 시간 동안 네 번을 따라서 피운다는 얘기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최불암은 이후 극중 담배를 한 번 또는 두 번만 피우는 것으로 줄이게 되는데요.
또한 그는 수사반장에 이어 이후 전원일기에도 22년이나 출연하며 국민적인 사랑을 받게 되는데 전원일기는 또 현대 정주영 회장이 그렇게 좋아해서 정 회장으로부터 드라마팀이 전부 초대를 받아 요리를 대접받기도 했는 그 인연으로 최불암은 후에 정 회장의 통일국민당의 전국구 후보로 영입이 되어 국회의원으로까지 당선이 되게 됩니다. 아버지도 없는 가난한 연기자였던 그는 그렇게 열심히 활동한 끝에 결국 국회의원까지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는데요.
최불암은 후에 와이에스로부터도 제안을 받으면서 서울 영등포의 지역구 의원으로도 출마했지만, 당시 30대였던 김민석 후보에게 지면서 정치가로서의 도전은 그만 참담한 실패로 끝이 나게 됩니다. 배우로서는 국민 아버지의 칭호를 얻으며 승승장구했지만, 선거에서는 결국 처참하게 패배하는 슬픔을 맛봐야만 했던 것인데요.
수사반장과 전원일기는 각각 18년과 22년이라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지만 그는 후에 한국인의 밥상으로 또 10년을 넘기며 10년 이상 장수 프로를 무려 세 개나 하는 꾸준함을 보여주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그도 이제는 팔순이 훌쩍 검은 고령의 나이가 되었고 더군다나 수사반장을 함께 했던 남성은 조경한 김상순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며 이제 형사는 오로지 마지막 최불암 하나만이 남게 되고 말았는데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형제도 없이 자라는 슬픔을 겪다가 후예는 죽을 고비까지 넘겨가며 가난한 처지에도 반대를 무릅쓰고 결국 부인과 결혼한 뒤 노력만을 맞는 굴욕도 마다안고 끝내 국민배우로 우뚝 섰지만 우연히 발을 들인 정치가로서의 도전은 처참하게 실패하더니, 이제는 과거의 영광을 함께했던 동료들도 모두 떠나버리고 오직 고령에 자신만이 남게 된 슬픈 처지가 되어버린 최불암 다른 배우들은 다 떠났지만 최불암만큼은 우리 곁에 영원히 건강하게 있어주기를 바라며 한평생 슬픈 인생을 살아온 배우 최불암에게 시청자 여러분의 따뜻한 응원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