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에는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윤여정 씨의 나이는 무려 75살이었습니다. 이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성과를 이뤄낼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보여줍니다. 윤여정 씨는 나이가 들어도 멋있고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며 나이 든 사람을 존경하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윤여정 씨의 젊은 시절은 결코 쉽지 않았음 몸이 부서져라 이래야 했던 힘든 시절을 겪었습니다. 최근 윤여정씨가 유 퀴즈에 출연해서 연기에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을 털어놓으며 조영남 씨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윤여정씨는 1947년 6월 19일에 태어나서 77살이 되었으며 북한에서 태어나서 출세한 곳은 북한 개성입니다. 이후 이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웅변이나 글쓰기 대회에서 많은 상을 받았으며 윤여정 씨는 말을 잘 못하지만 글을 잘 쓰는 사람입니다. 한현대학교에 진학한 윤여정 씨는 등록금 마련을 위해 알바로 김동건 씨의 프로그램에서 도우미 역할을 했습니다. 김동건 씨가 윤여정 씨에게 TBC 탤런트 공채 시험을 보라고 권유했고 1966년에 TBC 탤런트 공채에 합격하여 TBC 삼 기 탤런트가 되었습니다.
또한 배우 생활을 위해 윤여정 씨는 대학을 중퇴하였습니다. 윤여정 씨는 배우로서의 성공에 대해 우리 엄마에게는 내가 스타가 되었다고 말하면 자랑스러워할 것 같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탤런트는 당시의 신진 직업으로 등장했는데 서울대 출신인 이순재와 이낙훈의 대학 생활을 보고 창피한 직업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배우로서의 도전에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윤여정 씨는 신인으로 데뷔했을 때부터 다양한 작품에서 활약한 배우였습니다.
TBC 시절에는 단역과 조연을 맡았으나 공채 학교를 거쳐 1969년에 TBC로 이적하였고 1971년에는 MBC 드라마 장희빈에서 주연 역을 맡아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특히 윤여정 씨의 악녀 연기는 뛰어나서 사람들이 장희빈의 악역으로서 비난을 퍼붓는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1971년에는 영화계로 진출하여 거장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환입 에서 주연으로 출연하며 큰 성취를 이뤄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윤여정 씨는 대종상 신인상과 청룡영화상의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수상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훗날 윤여정 씨는 2021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소감에서도 김기영 감독을 언급하여 그가 살아 있다면 이 수상을 무척 기뻐했을 것이라고 언급하며 그를 창조적인 감각의 인자로 기억하였습니다. 하지만 윤여정 씨는 20대 시절에는 연기에 큰 애착이 없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가능하다면 연기를 빨리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 다른 여배우들이 찍는 수영복 화보와 같은 것들은 찍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윤여정 씨는 1970년대 초에는 잘나가던 신인 배우로 활약했지만, 서울 마포구 중구 음악 다방 세시봉 돼서 조영남 씨와 만나 결혼한 후 연기를 포기하고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조영남 씨를 위해 신학 공부를 하기 위한 유학길에 오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1987년에 조영남 씨와 이혼하고 아들 두 명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이는 윤여정 씨가 자신의 어머니를 보며 배워온 것이었습니다. 윤여정 씨의 어머니인 신소자씨는 이북에서 부자 가정일 며느리로 살다가 남편인 윤여정의 아버지가 34세로 세상을 떠나고 우리나라 최초로 양호교사 시험에도 합격하여 환자들을 돌보며 자식들을 키웠다고 합니다.
윤여순 씨는 윤여정 씨의 친여동생이자 LG 그룹의 최초 여자 임원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러나 조영남 씨와의 결혼 생활 당시 돈을 벌지 않았고 윤여정 씨가 모아둔 돈을 다 써버렸기 때문에 돈이 필요했습니다. 윤여정씨는 38세 때 한국으로 돌아와 연기를 시작하였고 미국에서 복귀한 후에는 드라마에서 단역으로 출연하며 생계를 위해 보조 출연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0년 이상이 지난 후에는 연예계가 많이 변했으며 예전에 잘 나갔던 윤여정 씨가 보잘 것 없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선입견과 싱글맘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그녀를 쓰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윤여정 씨는 자녀를 키우고 생활비를 마련해야 했기 때문에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털어놓았습니다. 그때가 제일 힘들었다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애를 키우고 살아야 할지 고민했다.
그때는 집도 미국에 그대로 있었으므로 아이들을 공립학교에 보내면 구두 학교까지 돈을 안 내고 보낼 수 있었다. 타이핑도 못하고 영어도 잘 못하지만 우리 동네에 퍼플릭스라는 슈퍼마켓 체인이 있었다. 거기서 캐셔로 일할 수 있을 것 같더라 그래서 이웃집 여인 린다에게 알아봤는데 임금이 시간당 275달러였다.
이렇게 말한 후 그녀를 붙잡은 사람은 김수현 작가였는데 그는 윤여정 씨에게 배우로서 재능이 있으니 다시 일어나라고 조언했습니다. 김수현 작가는 당시에 매우 인기가 있었지만 자기 작품에 윤여정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내 백으로 네가 일어서게 되는 거니까 네 힘으로 하라고 하며 서로 함께 작품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맹세를 깨야 했습니다. 윤여정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무도 쓰지 않아서 김수현 씨가 나를 쓰라고 해서, 굉장히 부담이었지만 돈을 벌어야 했다.
후 김수현 씨의 다수 작품에서 열연을 펼치며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시 굳혔습니다. 윤여정 씨는 모든 인간관계를 끝내 일에만 집중하여 자녀 둘을 키웠습니다. 57년이 넘는 배우 경력을 가진 윤여정 씨는 작년 영화 미나리의 순자 역으로 여러 세계 영화제에서 수상하였습니다.
아시아 배우로서는 최초로 미국 영화배우 조합상 여우조연상과 영국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을 받았으며 제 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그녀의 수상 소감은 이러했습니다. 아들 둘을 키우기 위해 이라는 나갔고 이상은 엄마가 열심히 일한 결과다라고 말한 후 작은 아들이 울었다고 합니다. 윤여정 씨는 자신이 일하는 여자였기 때문에 집밥이 부족했다는 것에 대해 아들들이 괜찮다고 말하며 우리 글에서 다 말라죠잖아요라고 얘기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진짜로 미안해야 할 사람은 조영남 씨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윤여정 씨는 조영남 씨와 아들들은 나를 아버지로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러려니 하고 살아왔다 내가 자격을 잃은 것 같다라고 고백했습니다. 2022년 3월 23일 윤여정 씨는 유 퀴즈에 출연하여 마지막으로, 김수현 씨가 쓴 대사 중 가장 사랑하는 대사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대단하고 안타깝게 소종하면 상대도 마찬가지야 누구도 누굴 함부로 할 수 없어 그럴 권리는 아무도 없는 거야. 그건 죄야 기 대사가 윤여정 씨의 가슴에 맺힌 것 같은데, 이 말이 조영남 씨에게 한 말이었을까요? 과거에 조영남 씨가 윤여정 씨에게 다시 윤여정 씨와 이혼하면서 미가 너무 못생겨서 같이 살 수가 없다는 식의 막말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영남 씨의 막말로 미루어 보면 그 결혼 생활 당시에는 윤여정 씨를 어떻게 대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마디의 말로 열정을 알 수 있다고 하잖아요.
조영남 씨는 윤여정 씨를 자녀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함부로 다룬 것으로 보입니다. 사람들은 조영남 씨 자신의 얼굴을 보고 그런 말을 하냐며 그를 비난하기도 했죠. 조영남 씨는 시라노 오은영 씨의 금쪽 상담소에 출연하여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려는 모습을 보였지만 건들건들 장난치듯이 그러지 말고 이제는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윤여정 씨와 자녀들의 인생에 함포로 한 것을 사과해야 하지 않을까요?
한편, 애플 TV 플러스의 파칭코어에 출연하는 윤여정 씨는 내가 하고 싶었다며 회사에서 스크립트를 주면서 오디션을 보라고 했는데, 거절했다고 밝혔습니다. 오디션에서 떨어져 50년에 커리어를 망칠 순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디션을 못 보지만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고 전했습니다. 결국 윤여정 씨는 오디션을 하지 않았지만 해당 내역을 맡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