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김호중이 최백호를 롤모델로 꼽았습니다. 미스터트롯 이 결승전 축하 무대에는 원조 낭만 가수 최백호가 깜짝 출연했는데요.
김용필과 최백호는 낭만 가격 선후배 관계에서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주며 연륜의 멋을 제대로 드러냈고 이로써 결승전은 한층 감동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무대가 끝난 뒤 최백호는 인생 선배로서 후배들에 대한 덕담을 전하며 그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최백호는 원래는 유망한 마라톤 선수였으나 선수 관리 체계가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에 몸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출전을 계속하다가 큰 곤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선수 생활을 종료하고 가수 활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젊은 시절에는 그의 강력한 목소리와 운동선수처럼 단단한 체력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러나 최백호의 삶은 굉장히 다양하고 힘들었습니다.
최백호의 아버지는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제 이 대 국회의원을 지낸 최원봉이었습니다.
그러나 최백호가 어린 나이에 태어난 지 5개월 만에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아주 엄한 분이었고 최백호를 싫어했으며 노여워했습니다.
이유는 최백호가 태어나자마자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는 종종 밥이 잡아먹은 자식이라는 속담을 들을 정도로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최백호의 어머니는 시골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는데. 당시에는 전근을 많이 다녀야 했으며 가족들은 이동하며 떠돌이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당시 교사로 일하던 어머니는 자녀들을 교육시키기가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최백호는 어머니가 아버지를 대신해 자녀들을 돌봐야 했고 어머니의 얘기를 자주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 대한 얘기가 그에게 신하처럼 다가왔고 아버지를 세상에 떠나셨지만 늘 뒤에서 지지해주는 존재로 느껴졌습니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일하면서 전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부산에서 장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최백호는 어린 나이에도 조숙했으며 아버지에 대한 그립고 험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자신의 노래 능력을 키웠습니다.
어머니의 부재로 인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나무 위에서 노래를 부르며 습작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고 이것이 그가 나중에 노래를 스스로 작사하고 작곡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사실 최백호의 꿈은 가수가 아니라 영화감독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극영화과에 합격했으나,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최백호가 대학에 다닐 기회를 주고자 하나의 해만큼 기다려주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에 다니던 중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가게를 운영하며 소득을 얻고자 노력하다가 췌장암 판정을 받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최백호는 군대에 입대하였으나 반년 만에 결핵을 앓게 되어 의가사로 제대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혼자 경남 동네 둔 일광해수욕장 인근에서 저렴한 방을 구해 요양하려 했지만, 월세를 낼 돈이 부족해 산속으로 들어가 오두막을 지어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중고 기타 하나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이 그의 힘들었던 시간을 달래주고 생각을 정리하며 노래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시기는 매우 어려웠지만 그를 노래와 음악에 전념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최백호는 약 이 년간의 요양을 통해 건강을 회복한 후 부산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의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와 짙은 음색은 큰 인기를 얻게 되었죠.
결과 최백호는 먹고살기 위해 통기타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서울로 진출한 후 1977년 1월에 데뷔곡 내 마음 갈 곳을 글 발표했습니다.
이 노래는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작성한 가사로 사람들은 연인과의 이별을 떠올리는 곡으로 듣지만 최백호는 이 노래를 부를 때 어머니를 생각하며 불렀다고 합니다.
이 노래는 단 3개월 만에 6000장이나 팔려서 최백호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78년에는 독특한 가창력으로 연이은 히트곡을 불러서 1년여 만에 톱 가수로 떠올랐고 1979년에는 인기포크 그룹 산울림과 함께 대학 콘서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당시 트로트 가요를 대세로 밀어내고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습니다.
최백호는 국민배우 김자욱과 1980년에 결혼식을 올렸으나 이후 3년 만에 1983년에 돌연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최백호는 이혼 이후 1984년에 현재의 아내인 손수인과 재혼하게 되었는데 그때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8살이었습니다.
손수희는 당시 콘트라베이스를 전공하는 학생으로 최백호는 그녀를 친구의 집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때는 그녀를 자신의 상대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연한 만남이 여러 번 반복되면서 최백호는 손수인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고 친구를 통해 더 자주 만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에게 끌리게 되었고 최백호는 친구를 통해 손수인에게 연락을 매번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손수희는 부탁을 거절하지 않고 항상 집에 놀러 오라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에게 점점 더 가까워졌고 최백호는 손수인을 만날 때마다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연을 통해 최백호와 손수인의 사랑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은 처음에는 집사람의 하숙생인 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결혼은 당시 집사람의 가족 반대로 인해 포기할 상황까지 이르렀지만 결국 결혼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최백호는 처가의 강한 반대로 인해 결혼을 포기할 생각도 했지만, 아내가 강인한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결혼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결혼 이후에도 최백호의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힘들었고 거의 돈을 벌지 못해서 그러나 그런 어려움을 무릅쓰고 아내는 가정을 도와주었으며 덕분에 집을 사고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최백호는 돈을 원하는 것이 없고 노래와 음악의 진심으로 전념하는 사람으로서의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결혼 후 잠시 한국에서 머물다가 다시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그곳에서는 라디오 코리아 DJ로 활동하였으나 한국에서의 활동과는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 2월에 귀국하여 공연과 관련된 활동을 다시 시작하였고 1996년에는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의 삽입곡으로 사용된 이런 삶의 허무와 지나간 시간에 대한 미련을 담은 낭만에 대하여 라는 곡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노래는 앨범이 35만 장이나 팔려서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 중 하나입니다.
최백호는 다양한 곡들을 부르며 인기를 얻었는데 그중에서도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낭만에 대하여 영일 일만 친구 청사포 바다급 부산에 가면 등이 명곡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는 한때 야간 업소를 일곱 군데나 돌면서 어려운 시기를 겪었지만 지금은 노래를 부를 때 행복하다고 말하며 노래로 얻는 저작권료 역시 고생 없이 오는 돈이라 미안하다는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최백호는 2008년부터 SBS 라디오 최백호의 낭만 시대를 15년간 진행하며 계속해서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방송에서는 공교롭게도 김자욱 씨의 막내 동생인 김태욱 아나운서와 함께 일했으며 함께 송출된 기분 좋은 밤의 DJ 역시 김태욱 아나운서와의 협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김태욱 아나운서 역시 고인이 되었습니다.
최백호는 앞으로도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을 보내며 그의 좋은 노래가 계속해서 우리에게 전달될 것을 기대합니다.
최백호는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싱어송라이터 본래 마라톤 유망주였으나 선수관리 개념이 확립되지 않던 시절 위에서 몸 상태를 가만 안고 출전을 밀어붙이며 무리를 한 통의 선수 생활을 접고 가수 활동을 하게 되었다.
젊은 시절에는 힘 있는 목소리와 운동선수 같은 탄탄한 몸으로 유명했던 가수 최백호 배우 김자옥과 결혼했으나, 이혼했고 훗날 다른 부인과 재혼하여 자녀를 두었다 2011년 11월 8일에 최백호 발매된 박주원의 이 집 앨범 슬픔의 피에스타 수록곡 중 방랑자의 피처링으로 참가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음악적 성격을 기존의 트로트풍에서 라틴 재즈 및 보사노바풍으로 바꾸는 시도를 하였다.
2012년 10월 29일에 발매한 복고 앨범 다시 길 위에서를 통하여 팝 재즈 누에보 탱고 집시 스윙 등의 월드 뮤지 교소를 적극 수용한 음악들을 선보여 대중과 평론계로부터 호평을 얻었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SBS 러브 FM에서 밤 10시 12시대에 최백호의 낭만시대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본래 SBS 러브FM 특성상 수도권에서만 방송되는 프로그램이었지만 방송 진행 도중인 2016년 5월 10일에 고향인 부산에 위치한 러브 FM을 개국하면서 자신의 방송을 부산에서도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굉장히 흥분되면서도 기쁘다는 인터뷰를 하였다.
특히 개국 당일에는 바로 앞 프로그램인 러브 FM의 김신식의 센텀 온에어의 전화 인터뷰로 출연해 소감을 전하고 이어진 자신의 방송에서도 첫 곡을 자신의 부산에 가면으로 선곡하며 방송에 끝날 때까지 연이어 기쁨을 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