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티김은 우리나라의 전설적인 디바로 시절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던 색다른 무대로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스탠다드 팝의 선구자이며 1960년대를 대표하는 명가수이자 디너쇼의 여왕인데요.
그녀는 항상 당당하고 멋진 모습으로 대중들을 만나 왔습니다. 하지만 54년 동안의 노래 인생을 끝마치고 2013년 돌연 은퇴를 선언했는데요. 은퇴 후 평범한 할머니로 살아가고 싶은 바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패티김은 길옥윤과 1966년에 결혼했으나 1973년에 이혼했고 1976년 이탈리아 사람인 아르만도 게디니와 재혼했습니다. 그리고 슬하의 두 자녀가 있는데요. 큰딸은 전남편 길옥윤의 딸이고 둘째 딸은 현재 남편인 아르만도 게디니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입니다.
두 딸은 아버지가 다른 이부 자매임에도 불구하고, 어지간한 친자매 이상으로 좋은 우애를 과시하고 있으며 가족 분위기도 굉장히 좋다고 합니다. 이렇게 화려한 가수 생활을 하던 그녀는 두 번의 결혼을 했습니다.
사실 패티김은 길옥윤과 결혼 후 참 좋은 노래들을 많이 냈는데요. 그들은 음악적 영감이 잘 통했다고 합니다. 패티김과 길옥윤은 1958년 일본에서 처음 만났다고 합니다. 그 당시 풋내기 가수였던 그녀의 예명은 패티김이 아니라 ‘린다김’이었는데요.
길옥윤은 패티김의 첫인상은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선배한테 먼저 인사도 하지 않고 서슴없이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고 하는데요. 둘은 가수와 작곡가로서 사무적으로만 만남을 가지다가 패티김은 어느 날 밤 호텔 방에서 뜻밖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곧 미국으로 떠날 예정이었는데요. 길옥윤은 전화에 대고 ‘4월이 가면’이라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말이 없고 내성적이었던 길옥윤은 노랫말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 전했고 두 사람은 그해 12월에 결혼을 하게 됩니다.
신혼여행은 월남 파병 한국군 위문 공연으로 대신했는데요. 둘의 만남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신혼여행이었지만 이 신혼부부는 듣도 보도 못한 월남땅 정글 속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청춘들에게 ‘타향살이’를 불러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더할 나위 없는 가수와 당대의 작곡가의 결합은 수많은 아름다운 곡들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그대 없이는 못살아’ ‘사랑이란 두 글자’등이 두 사람의 신혼 때 탄생한 곡인데요.
하지만 노래들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준 것에 비해서는 둘의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패티김과 길옥윤은 슬하의 딸을 하나 두고 결국 결혼 5년 만에 이혼을 하게 되는데요.
이혼은 했지만, 쿨한 부부답게 음악 생활은 계속하기로 했습니다. 5년 동안 발표한 곡 중 대작품이 많고 음악적으로는 정말 기가 막힌 팀이었으니 그렇게 하기로 했다고 하는데요.
훗날 패티김은 그들의 이혼에 대해 “모두 나 때문에 이혼한 것으로 오해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서로 너무 몰랐던 것이 결혼 실패 원인이었던 것 같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또 “길 선생은 365일 술을 마시며 도박까지 했다. 부인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는데요. 현재 이탈리아 남편과의 불륜으로 고인과 이혼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그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합니다.
페트김은 “나는 나 자신을 위해 부정적인 짓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내 노래를 위해서도 나를 망가뜨리지 않는다”고 말했는데요. 평소 철저한 자기 관리로 유명한 패티김이었기에 길옥균의 그런 망가진 모습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의 속사정은 모르겠지만 작곡가와 가수로서는 최고의 팀이었는데요. 이제는 행복한 노년을 가족들과 보내겠다는 그녀의 영화 같은 멋진 인생에 박수를 보내고 싶고 응원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