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에게 사랑을 받은 배우 박영규는 연기의 모든 장르를 소화해내며 큰 인기를 누렸지만 그의 개인 생활은 우여곡절이 가득했습니다. 세 번의 이혼과 네 번의 결혼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아픈 일들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의 첫 번째 부인은 서울외대 후배로 폐결핵을 앓을 때 돌봐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1983년 결혼식을 올리더니, 양가에서 반대를 받았으며 서로서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자취방에서 신접한 살림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도 아내의 부모님은 인정해주지 않았고 두 사람은 서서히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90년대 중반 첫 번째 이혼을 하게 되는데요.
이후 두 번째 결혼 상대는 당시 톱 디자이너였으나 3년 정도 후에 헤어지게 됩니다. 이혼 당시 아내가 암에 걸렸고 박영규는 헌신적으로 아내의 병간호를 담당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건강할 때도 아내 노릇을 제대로 못했던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며 투병을 위해 이혼을 선언합니다. 이 사실로 인해 일부 오해가 생겨 세 번째 결혼 때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는 2004년 큰 슬픔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바로 하나뿐인 아들이 갑작스럽게 사고 소식이었는데요. 당시 아들은 22살로 미국에서 전처와 함께 유학 생활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친구의 오토바이 뒤에 타다가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이었는데요. 이로 인해 박영규는 큰 충격을 받고 잠정적인 은퇴를 하고 캐나다와 필리핀으로 떠나버렸습니다.
이후 한 인터뷰에서 아들을 잃고 너무 큰 충격으로 모든 것을 피했다고 말하며 그 이후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고 합니다.
세상을 등지면서 살면서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 일들을 겪어야 하는지를 후회하며 자신이 태어난 이유를 의문하고 때로는 생을 끝낼까 하는 시도까지 생각했던 시기도 있었는데요.
그렇게 슬픔 속에서 살아가던 박영규는 필리핀에서 사업을 하며 연예계를 완전히 떠났습니다. 이때 세 번째 아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2004년 친구의 결혼식에서 만났고 두 사람은 한국에서 조금 친분이 있었던 관계였는데요.
박영규의 아들 사고 때도 함께 있어 많은 힘이 되어 주었던 인연으로 결혼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박영규의 삶은 계속 쉽지 않았습니다. 아들을 잃은 큰 슬픔을 겪었을 뿐만 아니라 필리핀에서 하는 사업 역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골프장 사업을 한국인을 대상으로 시작했으나, 여러 가지 잡음으로 인해 결국 포기하게 되었는데요. 아내와 함께 일정 지분을 투자했지만, 투자자들과의 의견 조율 문제로 고생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드라마 ‘오로라 공주’를 촬영 중 갑작스럽게 하차하는 등 황당한 일도 겪게 됩니다. 박영규는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의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는데요.
이후 다시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 등으로 활동을 이어나가던 그는 돌연 세 번째 파경 소식이 아닌 네 번째 결혼 소식을 전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신부는 일반인으로 알려진 이 모 씨로 결혼식은 가족과 친척 가까운 지인들만 참석한 소박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박영규는 쓰디쓴 아픔을 겪었지만 모든 시련을 견뎌낸 사람입니다.
모든 일은 사랑을 표현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한 그가 앞으로도 좋은 연기를 펼치며 계속해서 그를 만나볼 수 있기를 바라며 그의 더욱 밝고 행복한 인생을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