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가수로서의 배호는 한국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상상도 못할 정도로 가슴 아프게 살다 간 인물이며 무엇보다 그의 집안이 독립운동 투사의 집안이었다고 합니다.
배호는 늘 반듯한 정장을 즐겨 입었던 귀공자 타입의 미남형이었지만 핸섬한 얼굴과 부티 나는 금테 안경에 가려진 그의 삶은 그의 이미지와 전혀 딴판이었습니다.
배호는 부친의 독립운동 때문에 중화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었으나 1945년 8월 광복을 맞아 부모님을 따라 환국한 뒤 1948년에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습니다.
장남으로 태어난 배호 역시 그 시절 다른 많은 독립투사의 자녀들이 그랬던 것처럼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 자랐습니다. 부모의 손에 이끌려서 귀국한 어린 배만금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다시 부모를 따라 부산으로 가서 피난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는 음악에 천부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학교를 다닌 것이라곤 중학교 중퇴가 고작이어서 음악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 악보를 잘 읽지 못했음에도 소리만 듣고 바로 연주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무도 흉내를 내지 못하는 독특한 음색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대중에게 쉽게 각인되기 시작했는데요. 하지만 반대로 기성대중음악계의 텃세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요. 그런데 1966년 배호에게 시련이 닥쳤습니다. 생각지도 않게 신장염이 발병한 것이었는데요. 당시는 치료 여건이 요즘 같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의료기술이나 약이 요즘처럼 발달한 시절이 아니었으니 쉽게 낫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노래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사망할 때까지 배호는 쉬지 않고 신곡을 냈습니다.
그에게 노래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고 삶의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지병은 더 깊어만 갔고 몸 상태는 날이 갈수록 악화됐는데요. 그런 상태에서 그해 25세의 나이로 그가 병상에서 헌신의 힘을 다해 불러 취입한 신곡이 바로 배상태가 작곡한 불세출의 ‘돌아가는 삼각지’였습니다.
그런 만큼 이 노래는 앨범이 무려 20만 장이나 팔려 크게 히트함으로써 배호를 톱가수 반열에 올려놨을 뿐만 아니라 음악 차트 사상 드물게 20여 주 연속 1위를 기록한 그의 대표곡이기도 합니다.
배호는 가수 사상 드물게 첫 히트곡 1위에 오른 뒤 4개월 만에 MBC 방송 10대 가수로 선정됐습니다. ‘돌아가는 삼각지’외에도 ‘누가 울어’, ‘안개 속으로 가 버린 사람’등이 연달아 히트하면서 배호는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1967년 방송사들이 수여하는 가수상을 휩쓸었습니다.
하지만 1971년 10월 배호는 라디오 이종환의 ‘별이 빛나는 밤’에 출연을 마치고 귀갓길에 비를 맞고 갔다가 감기에 걸려 그만 신장염이 재발돼 병원에 재입원하게 되어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당시 병상 곁에서 간호해주던 7세 연하의 여성이 있었는데요. 배호보다 7세 연하인 그녀는 대구 공연 때 배호의 팬으로 만나 배호와 장래까지 약속한 사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숨을 거두기 하루 전 배호는 그날도 자기 곁을 지켜주던 그녀에게 자신의 손목시계와 반지를 건네주면서 자기를 떠나라고 했다고 합니다.
배호는 한사코 안 가겠다고 울부짖던 그녀를 폐가 끊어질 듯한 고통을 참으면서 설득해 눈물로 고향에 돌려보냈다고 하는데요. 당시 두 사람의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그는 1971년 11월 7일 배호는 결국 운명했습니다. 그의 나이는 만 29세로 미혼이었는데요. 너무 젊은 나이에 사랑하는 이를 남겨두고 떠난 배호를 향한 대중들과 지인들의 슬픔은 너무 컸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