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수미는 70년대 초 김추자, 정미주와 함께 트로이카 시대를 연 ‘여고시절’의 가수 이수미 씨는 한동안 방송에서 모습을 볼 수 없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질 때쯤 최근 그녀의 근황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수미 씨는 지난해 12월 폐암 3기 판정을 받고 현재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투병 생활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그 시절의 연예인들이 보통 그러듯이 이수미 님도 마찬가지로 파란만장한 굴곡이 있는 삶을 살아온 연예인인지라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큰 것 같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이미 동네와 학교에서 노래 잘 부르는 여학생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1971년 여학생의 신분으로 <때늦은 후회지만>으로 가요계 정식 데뷔를 했는데요. 첫 데뷔 앨범의 성적은 무난했지만, 데뷔 앨범으로 작곡가 김영광 씨의 눈에 들게 되었고 이듬해인 1972년 김영광 작곡의 ‘여고시절’을 발표하게 됩니다.
해당 곡이 당대 히트곡이 되면서 그녀는 하루아침에 가요계의 신데렐라로 떠오르게 됩니다. 그 허스키하고도 호소력 있는 특유의 음색으로 인기를 누리며 당시 신인 가수상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MBC 10대 가수상 TBC 7대 가수상을 받으며 톱 스타임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또한 그녀의 부드럽고 청순가련 형의 외모로 많은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하는데요. 아무튼 ‘여고시절’로 최고의 인기를 달릴 무렵 MBC의 PD 이종환 씨의 눈에도 들게 됩니다. 이종환 씨는 이후 이수미 씨의 매니저 역할을 자처하며 두 사람은 가까운 사이가 되었는데요.
훗날 이종환 씨는 이수미 씨와의 스캔들 관련으로 한 남성을 감금, 상해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또 그녀에게는 1973년 여름 대천해수욕장 피습사건이 있었는데요. 당시 우리나라 최고의 해수욕장인 대천해수욕장에서 MBC 공개방송이 진행되었고 이수미 씨가 초청 가수로 출연했을 때였습니다.
그날 밤 이수미 씨는 방송을 마치고 바닷바람을 쐬러 바닷가를 거닐고 있을 때 정체 모를 괴한이 나타나 그녀의 복부를 흉기로 찌른 것입니다. 정말 충격적인 일이었는데요. 범인은 어둠 속으로 도망치고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엄청난 상처를 입고 병원에 입원한 이수미 씨는 무려 16cm나 되는 큰 상처였다고 합니다. 게다가 수술로 생명은 건질 수 있었으나 이 때문에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다고 하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게다가 의아한 건 이 사건 이후로 이수미 님의 인기는 하락을 했다고 하는데요. 초반에 이 사건은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서 사고를 당한 것으로 증언을 하고 경찰 수사가 진행되었지만 이후 이수미 님은 이 증언을 번복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괴한에 의한 피습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자해했다고 발표한 것이었습니다. 내용인, 즉 그동안 사귀어 왔던 남자가 있는데, 갑자기 자신에게 관계를 청산하자고 요구했다는 것 그리고 남자는 처자식이 있는 유부남이었다고 합니다.
어찌 되었든 당시 20대 초반 철없는 나이에 이수미 씨는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를 받고 충격에 스스로 면도날을 꺼내서 자해를 했다는 것입니다. 대중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당시 최고의 인기가수였던 이수미 씨의 이미지는 크게 실추되어 버립니다.
그 뒤로 그녀는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또 반전이 훗날 이수미 씨가 방송에 나와서 당시의 사건을 회상하기를 “당시의 사건은 자해가 아니라 피습이 맞다”라고 두 번째 번복을 해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는 30년이나 지난 후에 고백을 한 것이었는데요.
당시에 “짧은 머리의 20대 남성이 범인이다”라고 진술했는데 당시 대천해수욕장에 놀러 왔던 수백명의 죄 없는 남성들이 끌려와서 신문을 받는 등 여파가 너무나도 크게 번져나가자 사건을 덮어버리는 편이 더 낫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말 복잡한 사건이었는데요. 당시에는 결국 이수미 씨의 자해로서 결론이 났습니다. 이후 가수 협회 1년여간의 제재가 풀리고 <내 곁에 있어주>로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했지만, 또다시 연예인 대마초 사건에 다시 연루돼 7년 동안 활동이 금지되기도 하는 등 불행은 계속되었습니다.
이수미 씨가 회상하길 “자신의 생일날 동료연예인들이 대마초를 피고 있었고 단지 그 연예인들과 가깝게 지내고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로 내려진 결정이었다”며 너무 억울해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고 당시 심정을 밝혔습니다.
결국 이수미 씨는 낮에는 한 화장품 회사의 홍보 사원으로 백화점에서 근무를 하고 해가 지면 밤무대에 올라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다른 사람들로 인해 그런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못 견딜 만큼 힘들었지만 가족 만을 생각하며 버텼다고 하였습니다.
이후 끊임없이 제기를 꿈꾸었지만 실패했고 결국 이수미 씨는 스스로 외부와 단절하고 신앙 생활에 전념하였다고 합니다. 그런 이수미 씨의 새로운 삶이 다가온 것은 지난 97년이었습니다. 바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된 것이라고 하는데요.
후배의 소개로 만난 남편을 이수미 씨는 ‘천사표 남편’이라고 부를 정도로 둘 사이가 좋다고 합니다. 이후 삶의 안정을 찾고 대한 가수협회에 감사직도 겸하는데 가수들의 권익 보호, 권리 신장에도 힘을 많이 썼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이번에 안타까운 소식으로 몸이 아프면서 가수 협회 감사직도 올해 1월에 내려놓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이수미 씨는 입원 전까지도 신곡을 녹음하면서 노래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고 하니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이렇게 그녀의 삶을 돌아보니 화려하게 데뷔해 주목을 받았던 톱 스타였지만 그것도 잠시 너무 파란만장한 일생을 겪은 것 같은데요. 부디 빨리 완쾌하셔서 또 건강한 모습 그리고 멋진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