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충격적이네…” 배우 이성민이 아내에게 저지른 충격적인 만행과 3년이 지나도 정리를 하지 못하고 있는 진짜 이유

남자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대부분 그렇겠지만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 후 가장 오랫동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은 바로 아내입니다.

사실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대부분이 잠깐의 인연 이후 스쳐 지나가는 만남 인데 그런데 아내는 언제나 내 옆에 있는 오직 한 사람으로 가장 긴 시간 인연을 맺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주인공 이성민 역시 첫 인상이 재수 없다 고백한 아내를 굶기지 않겠다고 약속해 놓고 가스비 낼 돈조차 없어 딸의 탄생이 부담스러워 식은땀을 흘렸 다고합니다.

그때 기억이 지금까지도 남아 여전히 아내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배우 이성민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대해 말해 보고자 합니다.

1968년경북 봉화군 한적한 시골에서 태어난 이성민은 어린 시절 연기자로서의 소질이 전혀 없다 고등학교 때 단체 관람으로 본 연극을 보고 배우가 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그래서 고3 때 대학 원서를 쓸 무렵 시골 마을에서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연극 영화과를 가겠다고 원서를 내자 교무실에서는 난리가 나 당시 담임 선생님이 한다는 말이 선생님들 야가 연극과 간답니다.

네가 인마 이 학교 개교일이 처음 이야라고 하며 이날 교무실에서 선생님들로부터 속된 말로 개망신을 당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배우의 꿈을 반대했던 것은 비단 학교 선생님들 뿐만 아니라 당시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주말에 영화를 항상 보던 그의 아버지조차 그를 불러 말을 했다고 합니다.

네가 연기를 좋아하는 건 알지만 너는 아니다 차라리 공부를 더해서 좋은 대학 다시 가라 그리고 용돈 줄 테니 여행이라도 다녀 오라고 하며 면전에서 찢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경북 봉화 시골 소년 이성민은 주위 사람들의 강한 만류로 본인조차 그래 내가 무슨 배우야 미친 거지라고 생각하며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배우의 꿈을 포기하게 됩니다.

이와 관련해 그가 고백하길 사실 환경이라는게 어지간한 동네에서 배우를 한다고 해야지 나는 동네 최초였고 당시 우리 동네에서 배우를 한다는건 그 누구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었다.

그래서 선생님들도 얼마나 무시하든지 그런데 세월이 흘러 하루는 나에게 처음 들어보는 낯선 교장 선생님의 전화가 왔는데 모교를 빛내 주셔서 고맙다고 하더라라고 했습니다.

이후 배우를 포기하고 재수를 하던 그가 하루는 인근 축제에 놀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자신이 탔던 버스의 문이 착 열리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연극 단원 모집이라는 포스터가 딱 그의 시선에 한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렇게 버스에서 내려서 이거 뭐지 하고 보는데 연극 연기라고 쓰여 있길래 당시 속으로 이 시골에 이런게 있었나 아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한번 해볼까 이거는 공부하면서도 할 수 있잖아라고생각하며포기했던 배우의 꿈이 꿈틀꿈틀살아나게 됩니다.

이후 그는 재수생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극단을 찾아가서 잠시 접었던 배우의 길로 다시뛰어들었고물론 당시 집에는 따로 말을 하지 않은 채 공부는 완전히 포기하고 극단 선배들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며 극단 생활에 매진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 생애 첫 공연까지 하게 되었는데 사실 그렇게 큰 역할은 아니었지만 훗날 그의 고백에 따르면 당시 너무 눈물이 나서 가슴속에는 뭔가가 불타오르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20살에 잠깐 경험했던 이 느낌이 지금까지 35년간 배우로 버틸 수있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했습니다하지만 이런 은밀한 극단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하루는 어머니가 그가 공부를 잘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독서실을 찾았다가 독서실 사감이 어머니에게 제 공부는 전혀 안 하고 매일 밤 셔터 열고 들어와요 뭐 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하며 그의 이중 생활을 폭로하게 됩니다.

결국 어머니가 이성민을 불러 너 요즘 대체 뭐하니라며 추궁하자솔직하게연극 공연을 하고 있다는 것을 토로하게 되었고 그리고 이내 아버지 귀에도 소식이 들어가면서 그야 말로집안이 난리가 나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이때는 고모까지 찾아와 절대 연극하면 안 된다 하지 말라며 그의 연극 생활을 만료 했고 그래서 결국 마지막 공연까지만 하고 군대를 다녀와서 다시 공부를 하겠다고 약속한 뒤 또 한번 배우의 꿈을 포기하게 됩니다.

하지만 군대에 입대해서도 짧았지만 강렬했던 영국 생활의 기억과 감동이 자꾸 가슴속에서 불타올랐고 근데 마침 영국 연주를 하던 한 선배가 대구로 와라 오면은 담뱃값하고 밥은 먹여줄게라고 합니다. \

전역 한지 일주일 만에 단돈 7만원을 들고 더 큰 세계에서 연극을 하겠다는 꿈을 하는 채 1991년결국 대구로 향하게 됩니다.

그렇게 시골에서 대구로 가보니 시골에서 봤던 연극은 연극도 아닐 만큼 그야말로 신세계였고 하지만 밥값은 챙겨주겠다는 선배의 말은 사실상 거짓말이라 이때부터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됩니다.

당시 그는 무일푼에 도움을 청할 선별한 친구도 하나 없는 낯선 대구에서 다른 사람이 먹을 때나 옆에 껴서끼니를 해결하는 날이 대부분이라 서러운 마음에 혼자서 베개를 껴안고 울기도 참 많이 울어야 했습니다.

그러다 하루는 배가 너무 고파 주위를 살펴보니 커피 프림이 보이길래 끓인 물에 커피 프림을 풀고 남은마가린과 설탕을 부어 먹어 있는데 그날 먹은 이 음식이 생에 먹어본 최악의 음식이었다고했습니다.

이 만큼 굶주림의 절박했던 그가 또 하루는 떡볶이를 천원어치 사고 떡은 몇 개 없다 보니 국물 좀 많이 주세요 좀 더 좀더라고 사정한 뒤 국물로 배를 채우다 밤새도록 속쓰림으로 고생하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이 무렵 이성민 그의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한 인연인 현재의 아내를 만나게 되는데 그런데 놀랍게도 훗날 그의 고백에 따르면 아내의 첫 인상은 굉장히 재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당시 출연 중이던 연극에는 안무가 가 필요했고 그래서 지인의 소개로 무용가 아내와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그런데 아내가 사무실에 와서 다짜고짜 맡겨진 물건을 내놓으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내가 매일 공연마다 따라다니며 계속 보고 그가 다쳤을 때 걱정을 해주며 심지 밤에는 전화까지 몇 번 오자 그래서 그가 속으로 아 안무비를 달라는 거구나 안무비를 줄 때가 됐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극단에서는 아내의 안무비 책정이 안 되어 있다보니 본인의 선에서 적당히 해결해야 하겠다고 마음먹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식사 한번 하시죠라고 말을 하게됩니다.

안무비를 밥으로 때우려고 하는데 그런데 아내가 자주 연락해도 돼요 말을 하며 먼저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첫인상은 있고 아내와 연애를 하게 되는데 단 연애 조건으로 본인이 형편도 안 되고 돈도 없고 능력도 안 되니 결혼 이야기는 절대 꺼내지 말라는 조건을 걸고 연애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1년 후 이번에도 아내가 먼저 결혼 이야기를 꺼내더니 우리 집에 인사 하라고 했고 그러자 이에 이성민이 무슨 소리야 나 결혼 못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유부단한 그와 다르게 아내가 맵고 끊기를 잘하고 워낙에 리더십이 있다 보니더는 결혼을 미루지 못하겠다 싶어 까짓거 결혼하자면 아내와 결혼하기로마음먹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그는 장인 장모가 반대할게 뻔하니 아내에게 이와 같은 부탁을 하게 되는데 당신이 날 좀 도와줘야 된다 내 정보를 미리 부모님께 다 얘기하고 내가 얼마를 벌고 앞으로 뭐랄 것인지 모두 다 미리이야기하라며 장인 장모의 충격 완화를 위한 작전을 돌입하게 됩니다.

그렇게 아내는 그의 말대로 부모님께연극배우인데앞으로도 계속 배우를 할거다와 같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미리 다 했고결국 이후 나를 잡고 평소 극단에서 맨발에 거지처럼 살던 그가 처갓집 앞에 있는 목욕탕에서 깨끗이 씻은 뒤 사과 한 박스를 사들고 마침내 처갓집에 찾아가게 됩니다.

아무튼 그렇게 처갓집에 인사를 드리러 갔는데 그런데 딴 건 안 물어보시고 이성민을 보더니 딱 한마디만 하시는데 그건 바로 굶기기야 하겠어 였습니다.

그러자 이성민이 굶기게 하겠습니까? 라고 답하며 마침내 결혼을 승낙 받았고 하지만 결혼과 함께 바로 아내를 굶기더니 심지어 당시 가스비를 낼 돈조차없어서장인어른의 카드로 결제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당시 장인어른은내색조차 하지 않고 또한 출간 딸집에는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고 그러다 훗날 그가 배우로서 크게 성공한 후에야 장인어른이 처음으로 집에 방문했다고 합니다.

그때 아버님께 집을 보여 드리면서 뭔가 기분이 묘했다고 했습니다 한편 그가 앞서 연애의 조건을 걸었듯이 사실 결혼을 할 때도 조건을 걸었었는데 그건 바로 아기는 당분간 갖지 말자는조건이었습니다.

그렇게 당시 그는 단칸방 신혼 생활에 그 방조차 얻을 돈이 없어 겨우겨우 보증금을 간신히 구했기때문에적어형편이 최소한 어느 정도까지는안정적일 때 그때 아기를 갖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신혼여행에서덜컥 아이를 임신하게 됩니다 이때를 그가 고백하길 아내에게 참 미안 한게 안 굶기겠다고 하고 굶기고 아기를 안 가지겠다고 하고 바로 허니문베이비를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우리딸 에게도 미안하지만 솔직히 임신 소식을 듣고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데 난생 처음으로 느꼈던 두려움이었다 사실 내가 아무것도 없이 살며 결혼까지 한 것도 큰 부담이었는데 그런데 아이가 생겼다고 하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대개 임신 소식을 들으면 굉장히 기뻐하는데 지금이야 딸아이가 너무 사랑스럽지만 그때 기억을 생각하면 많이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그는 없는 살림의 아내가 임신까지 하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배우로서 승부를 걸어봐야 되지 않겠냐는 생각에 무려 35 굉장히 늦은 나이로 서울로 상경해 대학로에서 연극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 아내와 딸은 대구의 둔 채로 홀로상경했는데당시 가족들에게는 딱 3년만 도전해보고 안되면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고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며 일주일에 한 번씩 대구에 내려오는 기러기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 당시에도 형편이 너무 좋지 않아 일주일에 한 번 대구에 내려 갈 때마다 아내에게 생활비를 주기는 커녕 오히려 본인이 늘 10 만원 씩 용돈을 받아 차비와 담배값을 했다고 합니다.

그 돈을 받아갈 때가 가장 미안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때 그는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동대구역에 내리면 집에 가는 차비도 아까워 집까지 걸어갔고 하지만 반대로대구에서서울로 올라갈 때는 단 1분이라도 딸의 얼굴을 더 오래 보려고ktx를 타곤 했습니다.

또한 워낙에 불안한 삶 살다보니 어떤 상황이 생길지 몰라 만약 대학로에서 하던 연극마저 짤리면 바로 돈을 벌기 위해 택시회사 대리운전회사 전화번호를 적어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결국 가족과 약속한 3년을 지났지만안타깝게도 무명생활은 청산하지 못했고 그래서 이때 모든 걸 정리하고 대구로 내려갈까 생각도 잠시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방 출신의 배우도 연기 실력이 뛰어나면 전국적으로도인정받을 수 있다는 설레를 만들어 지방 후배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좀 더 서울에 있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가족들도 그의 뜻을 믿고 함께 서울로 이사를 했고 하지만 이때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시기였습니다.

당시 딸이 서울에서 초등학교입학식을 하고 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는데 고기 사줄 형편이 안되서1500원짜리 대패 삼겹살을 사주는데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그래서 그때 기억이 지금까지도 남아 이날 이후 대패 삼겹살은절대 먹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무렵 생활이 너무 어려워 보증금 2천만원 짜리 집에서 500만원은 생활비를 쓰려고 어쩔 수없이 1500 만원짜리 집으로 다시 이사를 가야 했는데 그렇게 공연을 마치고 집에 갔더니 2층이었는데 입구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게 됩니다.

그럼에도 아내를 위해서 밝게 가야지 마음 먹고 계단을 탁탁탁 힘차게 밟고 들어갔더니아내가등을 돌리고 싱크대를 닦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나왔어 밝은 척을 하며 집 넓고 좋네 괜찮네 뭐라고 했지만 아내가 반응이 없길래 사람이 왔는데 좀 돌아보고 해야지 하는 순간 아내가 돌아 봤다고 합니다.

그녀는 싱크대를 닦으면서 그렇게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 펑펑 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아내는 단 한 번도 그에게 연기 그만두면 안 돼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었고 합니다.

그러다 2004년 한 영화의 건달력으로 엑스트라로 출연했는데 이때 그의 연기를 눈여겨본 배우 선원주가 그를 추천하면서 마침내 오랜 기다림 끝에 드라마에 출연하게 됩니다.

이후 수많은 작품에서 신들린 연기를 보이며 그야말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배우 중 한 명이 되었고 하지만 이런 성공 후에도 과거 아내를 워낙에 고생 시킨 전적이 있어서 그런지 지금도 미안해 하며 잡혀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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